남자가 외로울 때
남자는 외로울 때 무엇을 하는가?
술을 마신다? 그것도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아니면 <필름이 끊길 때까지>?
친구를 만난다? 그리고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남자는 무엇이 외로운가? - 물론 여자가 외롭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남자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사회생활에서 따뜻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오손 도손 사이좋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으면 그는 매우 복 받은 사람이다.
어차피 사회는 거칠고 위험은 도처에 깔려있다.
언제 한 발 헛디뎌 파멸로 갈지는 누구도 모른다, 특히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는.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하는 친구가 수년전 한국에 왔을 때, 미국에서의 어려웠던 시절을
이야기하는데, 그때 이야기가 조금 삐걱거리고 있었다.
-미국은 말이야, 한번 앗 하고 실수하면 그냥 한 방에 가는 거야.
오호, 미국은 그렇단 말이지.....난 그런 좋은데서 살아보질 않아서 몰라.
물론 그의 어려웠던 과정과 그의 노력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난 시점이 좋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한국이 어려웠고 많은 친구들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의 표현에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행간에 그가 누리는 생활에 대한 약간의 자부심이,
조금은, 배어있었다.
아니다, 어쩌면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때 우리는 무언가에
두들겨맞아 혼란스러웠을 뿐이었다.
누구나 민감해 있었고, 게다가 우리는 한잔 걸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실수 한번 하면 가냐? 그런 배부른 소리는 짚어치워.
우리는 실수 한번 안 하고 멀쩡하게 있다가도, 어느 날 이유도 없이 한방에 간단 말이야.
많은 사람들이 소시민으로 착하게 살아도, 피할 수 없는 광풍 앞에
쓰나미처럼 날려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남자들은 말 안 해도 언제라도 자신들이 그리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전통적으로 가족에 대한 책무가 아직도 남자들의 몫인 이 사회에서,
일하지 못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하고 노력해서 된다면, 우리의 아버지들이 그래왔듯이
우리들도 성실하게 살고 싶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성실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여인들도 어려운 상황을 겪으면서 많이 강해졌다.
그런데 강해진 여인들이 남자들에 대해서도 강해져,
가뜩이나 약하고 힘들어진 남자들을 더 힘들게 한다.
우리가 사랑하던 여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우리는 꿈이라도 있던 시절 사치스러운 감정에까지도 눈물 흘리며
위로해주던 여인을 사랑했던 것이지, 지금처럼 강철같이 강한 여인을
사랑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랑이 밥 멕여주냐, 그러나 밥 못 먹고도 살아야하는
눈물겨운 인생살이에서 사랑마저 멀리 가버리면, 남자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경제적인 이유로 결국은 헤어져야했던 친구들을 나는 안다.
지난주에 전화를 받았다.
그는 벤처 붐이 한창 피크에 이른 2000년초 사업을 시작해 수년간을 꾸려오다
작년에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회사가 ‘화의’ 에 들어갔고, 그 때쯤 나와는 연락이 끊겼다.
오랜만의 전화에서, 그가 전하는 회사의 재기에 대한 가능성은 매우 희망적이었다.
그런데 그 좋은 소식 다음에 전하는 그의 개인적인 상황은, 집안은 풍지박산 나고
부인과는 이혼하였다는 것이다. 정확한 내용도 모르며 남의 이야기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그가 매우 힘들었을 것이고, 그때 무척이나 위로가 필요하였으리라 하는 짐작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명백한 것은 그때 그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여인은 그를 떠났다는 사실이다.
남자는 외로울 때, 그가 혼자일 때, 무엇을 하는가?
술을 마신다? 친구를 만난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술을 마시거나 친구와의 대화에서
그는 위로받지 못한다.
다만 일시적인 마취상태에서 잠시 고통과 외로움을 잊을 수는 있을 것이다.
남자는 외로울 때 혼자 있으려한다.
더 정확하게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상태에 빠지려한다.
모든 관계에서 단절되고 싶은 것이다.
집에서 내 방에 혼자 있어도, 물리적으로는 잠시 격리되어있지만
완전히 혼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 사무실에서 내 방에 혼자 있어도 혼자인 것은 아니다.
남자는 자신만의, 혼자만의 격리된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여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생활에서 남자는 아무래도 여자들보다는
도처에 얽히고설킨 관계의 늪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지하철 안에서 많은 사람들 틈에 있을 때 혼자인 것을 느낀다.
군중의 무리에 섞여있을 때, 오히려 나에게는 그 시간이 관계의 늪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군중속의 고독이라고나 할까.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
그 좋아하는 것이 그 행위에서 오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혼자 있는 격리의 시간이 확보된다는 관점에서 나는 이해한다.
며칠전 몇 명이 같이 모이는 저녁자리가 있었다.
술도 곁들여서 오간 대화에서 나는 남자들의 그런 애환과 희망을 다시 읽는다.
어떤 사람은 집에서 다투고 나서는 찜질 방에 간다.
집에서 다투고 난 후 만큼 외로울 때가 있을까?
대부분의 경우 발단의 구차스러움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 세상에 그래도 마지막까지
나를 위로해줄 사람인데...... 딱히 갈 때도 마땅찮았겠지만,
혼자 몇 시간 땀을 빼고 집에 다시 들어갈 때쯤에는 그도 많이 덜 외로워져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아등바등 다투던 일도 너그럽게 백기를 들고 항복해줄 수 있는 여유도 생길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외로울 때 혼자 차를 몰고 달린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금강휴게소까지 간다. 거기서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통하여 돌아오면
고속도로 요금도 많이 안낸다. 도대체 서울에서 금강휴게소까지가 어딘데......
심지어는 부산까지도 그냥 갔다 오기도한다고 한다.
어떤 때는 자전거를 타고 혼자 달린다. 나는 그를 이해한다.
나도 한동안 혼자 차를 몰고 미시령고개를 넘어 속초까지 다녀오곤 하였으니까.
운전하고 달리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달릴 뿐이다.
내 마음속에 있는 힘든 일, 아픔, 미움, 슬픔 이런 감정들을 다 잊는다.
내가 낚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잊는다>는데 있다.
낚시를 하면 잊는다는 것을 알고서 낚시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본질이 <잊음>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잊음>은
곧 <버린다>는 것에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나는 터득하였다.
그리고 분명했던 것은, 내가 처음 낚시를 시작할 때 나는 많이 외로웠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낚시를 가면서, 무언가를 좀 생각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나에게는 아직 낚시를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낚시를 가서 물위에 찌를 세우고 찌를 바라보면, 그때부터는 아무런 생각이 없고,
심지어는 고기를 잡는다는 것마저도 잊어버리게 된다.
낚시를 한다는 건 바로 모든 관계로부터의 단절과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찜질방에 다녀온 남자에게, 쳇 결국은 갈데가 없으니까....라고 하거나,
차를 몰아 먼데 다녀온 남자에게, 미쳤수, 기름값이 얼만데....
이야기를 대부분 이렇게 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여자들이 그래도 남자들이 혼자이고 싶어하는 마음을
조금만 더 이해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남자들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철저하게 외로워하다
결국은 득도하여 돌아오기를, 아니면 최소한 이기지 못할 상대에게
항복이라도 하고 돌아오기를.
그런데, 여자들에게도 얼마나 구구절절한 사연과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을까.
*조블 2005/12/0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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