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주 총선 후보등록 마감을 앞두고 벌어진 새누리당의 소위'옥새파동'은
마치 한 편의 시트콤과 같았다.
그걸 보면서 누구는 한탄을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동안의 한심한 꼴들을
잠시나마 깨뜨리는 것으로 시원하게 보았을 수도 있겠다.
어쨋거나 김무성은 그나마 체면치레는 했던것 같다.
그에게 남은 유일한 수단이었기에...
옥새파동은 내게 두가지를 떠올렸다.
2,
손견의 이야기.
후한(後漢)말 동탁을 물리치려고, 원소를 대장으로하는 연합군이 모였는데,
그중의 한명인 손견이, 동탁이 도망치고 이제는 불타는 낙양성 궁궐 안, 우물에서
서기가 비치는 것을 보고 찾아보니, 한 여인이 죽어있는데 목에는 도장이 있었다.
알고보니 이는 진(秦)의 전국옥새(傳國玉璽).
나라에서 나라로 전해진다하여 전국옥새(傳國玉璽)라 이름 붙은것인데,
이는 진(秦)의 승상 이사(李斯)가 만든 것으로,
이사(李斯)는 고대 한자를 자체와 서풍을 정리하여 전서(篆書)를 완성시킨 인물.
전국옥새를 손에 쥔 손견은 자신이 황제가 되라는 운명을 가진 것으로 해석,
옥새를 갖게된 사실을 비밀로 하고 훗날을 도모하기 위하여,
원소에게 자신이 병이 있음을 변명하며 군사들을 이끌고 고향 강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세상만사 어떤 것이건 비밀이 없는 법.
강동으로 돌아가는 길,
손견은 형주에서 유표의 군사들을 지나야한다.
유표는 손견에게 사람을 보내,
원소로부터 그대를 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지시를 거부할 수도 없으니 싸우긴 싸워야하는데,
사실 우리가 싸워서 뭐하겠냐 면서,
그저 싸우는 시늉만 할테니 손견도 그리알고 싸우는척하다가 지나가시라 한다.
과연 손견의 군사가 형주를 지나가는데 유표 군사들이 공격을 해온다.
손견은 들은 이야기가 있어 그냥 싸우는 시늉만하고서 빠져나가려는데,
유표 군은 실제로 무지막지한 공격을 하여 손견의 군사를 그야말로 박살을 내버린다.
손견과 직접 싸워서는 자신이 없던 유표는 이렇게 치사하게 간계를 써서 이긴다.
손견이 이 싸움에서 목숨을 잃는다.
이렇게 강동의 맹장은 목숨을 잃고 남은 군사들은 겨우 목숨만 부지한채 강동으로 도망간다.
옥새로 목숨을 잃은 강동의 맹장이야기다.
삼국지 이야기는 연의에서부터 드라마까지 이야기를 꾸민 것이 많아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모른다.
3.
내가 D그룸에서 근무하던 때다.
소위 IMF 금융위기때 우리 회사는 부채가 5조원, 워크아웃중이었다.
워크아웃은 '재무구조개선을 위한 금융기관 협약' 이라는, 당시 200개 정도의 금융기관들이 모여 만든 협약으로,
파산이나 법정괸리에 들어가기 전, 자율적으로 협의를 하여 그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하여 맺은 협약이다.
워크아웃에 들어간다는건, 말이 계약이지, 사실은 금융기관의 통치를 받는 상태.
채권자들은 시체에서 금니 찾기 게임중이었다.
우리는 부채가 5조원이었지만, 사실 채권도 그 정도의 금액을 가지고있었다.
그러니 부채, 채권을 합쳐서 따지자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상태였지만.
문제는 우리의 채권 5조원을 찾을 길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왜? 우리의 채무자들도 이미 거의 모두 죽어있는 상태였기때문이었다.
예컨대, 우리는 D자동차에 채권 8,000억을 가지고 있었지만, D자동차는 법정관리에 마악 들어가려는 상태.
법정관리에 들어가려면 채권자인 우리의 동의도 일부는 필요했다.
이 문제때문에 내가 인천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를 만났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10,000 대 1의 출자전환을 강요하고있었다.
8,000억의 채권을 8,000만원어치의 주식으로 주겠다는 것. ㅎㅎ. 기가 차서 나는 웃음소리...ㅎ
이제 옥새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런데 우리의 다른 채권자가 있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받아야할 돈은 1조원.
우리는 그동안 그 빚이 없다는, 말도 안되는(?) ㅎㅎ 주장을 하고있었는데,
사실 그동안 우리가 가진 빚이라는 건, 우리가 우리의 그룹으로 들어가는 자금의 통로역할을 하면서
우리를 스쳐지나간 자금이었을 뿐이었다.
그룹에서 차입하는데도 한도가 있었기때문에, 게열사들이 전부 동원되었는데,
우리도 금융기관이었기때문에, 통로로 사용된 것이었다.
우리는 정말 한 푼 만져보지도 써보지도 못한 돈이었다.
우리는 형식적으로는 빚이 있지만 실체적으로는 빚이 없다고 주장.
그룹과 너희들이 서로 합의보고 우리에게 잠시 통로역할만 해달라고 한 것 아니냐는게
우리의 주된 항변사유. 그러나 사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는건 나도 알고있었다.
도장 찍었지 않느냐...ㅎ
그들은 우리가 버티는게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우리로부터 우리가 빚이 있음을 인정하는 문서를 받고싶어했는데,
회사의 대표이사와 다른 임원 한 명은 그렇게 하자고 나에게 설득을 시작했다.
어차피 이렇게 망해가는데, 채권자들에게 잘 보여야 우리에게 그나마 조금이라도 살 길이 있지않겠냐는,
그야말로 눈물나는 이유였지만...
그러나 나는 계속 채권자와는 다투겠다, 결국에 가서는 진다는걸 알고있지만, 쉽게 지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
나를 설득하다 도저히 안되겠다 판단한 그들은 어느 순간 문서를 작성해서 법인인감을 그냥 찍어버려야겠다고
결심을 했는데, 이것이 내 정보망에 걸렸다.
이제는 인감지키기가 사활의 관건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때, 인사, 총무 관리, 기획, 채권, 고객, 콜센터 를 총괄하는 임원.
물론 법인인감, 소위 '옥새'도 내 관리하에 있었다.
실질적으로는 총무팀장이 금고에 보관하고있지만.
나는 즉시 총무팀장에게 법인인감을 가져오라하고, 인감을 내 서랍 속에 넣고 열쇠로 잠궈버렸다.
이제 '옥새'는 내가 관리....ㅎ
시간을 정했다, 하루에 한 번 정해진 시간 외에는 인감을 찍지 않는다고.
총무팀장이 하루에 한 번 내 방에 들어와 인감날인 내역들을 간단히 보고하고,
내가 보는 앞에서 인감을 직접 날인하게하고 그동안 나는 내 업무를 보았다.
그렇게 10여일이 지나갔다.
그런데 금융기관이다보니 엄청나게 많은 서류들에 법인인감을 수시로 날인해야할 일들이 생긴다.
도저히 내가 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대표이사와 다른 임원도 도장찍자는 이야기도 하지않으니,
그냥 전처럼 인감 관리를 해도 될 것 같았다.
총무팀장에게 법인인감을 돌려주었다.
그런데, 그들의 정보망도 가동중,
내가 사무실에 없는 틈을 타서, 총무팀장을 강압,
결국 채권자가 원하는 문서에 도장을 찍어서 채권자에게 곱게 갖다 바쳤다.
결국 어차피 그렇게 흘러가는 길목이었다.
누구도 막지 못하는 그런 흐름이었다.
구한말 을사오적이 없었어도 조선은 결국 망해가는 운명이었다.
4.
그제 저녁, D그룹 퇴임 임원들과의 식사가 있었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
당시 회사의 '옥새'를 몰래 빼내 찍은 임원도, 옥새를 지키지못했던 나도....
당시 대표는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분이다. 교회의 원로 장로님.
그리고 다른 임원 한 사람, 그는 양쪽 무릎 관절이 모두 상하고
이제는 한 쪽을 더 이상 쓰기 힘들어 곧 수술을 앞두고 있다.
목발을 짚고 나왔다.
항상 우리는 만나면 웃는다, 즐겁게.
이 자리에서 후배임원이 나를 위해 뽕나무를 직접 깎아만든 필산(筆山)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