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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서 - 김충현 현판서예전

일상

by 아이현 2016. 1. 3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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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풀렸다지만 겨울은 겨울.

인사동가는 길에 바람이 써늘하다.

 

백악미술관에서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1921~2006) 의

현판서예 전시회가 열리고있다.


 

 

   


미술관 1층에는 개인에게 써준 현판이 있고,

2층에는 공식요청으로 쓴 현판들이다.

그리고 3층은 김충현의 개인 자료들이 전시되어있다. 

 

역시 인간미가 느껴지는 글들은

모두 개인에게 써준 글들이다. 

 

 

         

 


전국에 흩어져있는 현판을 모으는 것도 힘이 들었지만,

현판들을 운반하는데만도 2억원 이상의 돈이 들었다 한다.

 

옮길 수 없는 글들은 실물 크기의 사진으로 전시되어있다.

 

김충현은 모든 서체에 두루 능했으나, 그중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예서.

그는 법고(法古)품은 창신(創新)의 예서 서풍으로

'일중풍' 예서를 탄생시켰다고 알려져있다.

 

그에게도 옥루흔(屋漏痕), 추획사(錐劃沙), 인인니(印印泥) 같은 것들로

고뇌하던 수련의 시절이 있었겠지만,

이제 그의 글은 그런 모든 것을 뛰어넘어 편안하다.

이런 것이 기능을 벗어나면서 나타나는,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라는 것일까.

 

대부분은 읽을줄도 모르는 행초서를 써야 행세하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적지않은 세태에,

그가 다른 서체도 아닌, 예서에서 특히 일가를 이룬 것이

내게는 커다란 용기를 준다.

 

 

         

 

1942년. "진도에서 목식동을 그리며" 

17세기 김수항의 시를 쓴 작품이다.

 

"서울의 내 집에 연연할 것 없나니

결국 만년은 이 언덕에서 보내야 하리...."

로 시작되는 시의 내용이,

내게는 애잔한 마음으로 전해져온다.

 

 

         

 

"예천법가(醴泉法家)"  35 x 135 cm

1983년 제자인 초정 권창륜의 집 당호로 써준 글인데,

예(醴)자를 보면 귀여운 미소가 보인다. 

 

권창륜은 1943년생.

젊어서는 대우 그룹사에서 직장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국전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으면서 매스컴에 화려하게 등장.

서예단체가 여럿으로 나뉘어진 지금도 국전은 대단하지만,

특히 옛날 국전은 그야말로 국내 유일의 국전으로

신문에 크게 보도되는 내용이었다.

 

당시 그와 같이 근무하던 선배로부터

그때의 순간과 여러 에피소드를 직접 들은 적이 있기에

그의 이름은 내게 제법 친근하게 들린다. 

 

 

         

 

어딘지 낯이 익은 글이다 했더니,

인사동 골목길을 많이 드나들던 시절

자주 눈에 띄던 한정식 집 상호다.

 

 

         

 

집에는 종류도 많다.

크기에 따라서,

당(堂), 루(樓), 헌(軒), 가(家), 옥(屋)....

 

 

         

 

능가산 내소사 1984년, (43 x 269 cm)

 

  

         

 

"석농(石農)"

 

일중에게는 평생을 그에게 전각을 해준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 돌 농사를 잘 하라는 마음을

"석농(石農)'으로 표현해서 써준 글이다.

 

일중의 현판작품을 보면서 궁금했던건,

그의 훌륭한 글을 누가 '서각'을 했는지였는데,

일중에게는 전각과 마찬가지로 평생 서각을 해준 사람이 있었다한다.

그는 인간문화재로 인정을 받은 사람. 

 

 

 "간송미술관"  

 

 

"청와무욕(聽蛙無慾)" 1987년.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욕심이 없다.

 

그러고보니 '청와헌'이라는 집 사진이 보인다.

개구리 소리 들으며 살기 딱 어울리는 집이다.

 

맨 아래에는 일(一), 중(中), 제(題)를 모아, 마치 한 글자처럼 썼다.         

                         

 

 

         

 


미술관은 한적했다.

나이 많은 어르신 한 분이 아주 천천히, 느리게 작품들을 둘러보고있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듯한 모습으로.

 

혼자 본다는 것이 내게는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

그에게는 어떤 추억과 기억들이 있을까.

 

때로는 어떤 기억들이 그를 아프게 할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둘러보는 그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일중은 서예를 하는 후배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백악미술관 대관료 이야기다.

인사동 다른 전시실보다 항상 30%가량 더 저렴하게 임대하는 것도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것이다.

층당 1주일 대관료 3백만원 정도.

 

서예인이라면 백악미술관에서 개인전시회를 해보는 것이 꿈.

전에는 2년전부터 예약이 꽉 차있었다는데,

지금은 아무래도 불경기라 여기도 사정이 옛 같지는 않은 모양이다.

 

 

         

 


3층에 올라가면 그의 흉상이 있고

양옆으로 그의 학생시절 작품 2점이 있다.

 

오른쪽이 '수신제가' (30 x 146).

1938년 일중이 18살때 그는, 이 작품으로

동아일보가 주최한 '전조선남여학생작품전'에서 최고상인 대상을 받는다.

왼쪽이 '십전매서' 1939년 (30 x 146)

 

여기서 16년째 일한다는 관리인이,

그는 자신을 마당쇠라 칭했는데, 그 관리인이 내게,

일중 선생의 '기'를 듬뿍 받아가시라고 말한다. 고맙다.

 

그러나 나는 부끄럽다.

여느 서예대가들처럼 소동파(蘇東坡)도 글을 열심히 써야 함을 강조,

이는 열심히 노력하는 가운데 깨달음을 더하는 것이

서예를 배우는 과정이라 해석되는데,

노력은 없이 깨달음만 거저 얻으려 하는 내 자신에 대한 자괴감때문이다.

 

 

         

  



 


         

 


위의 사진 몇 점을 보면, 그의 삶의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무욕으로 사는 삶.

 

광풍제월(光風霽月)

맑은 날의 시원한 바람과 비 갠 후의 달빛.

 

수월허금(水月虛襟)

물 위에 비치는 달과 텅 빈 마음.

 

언제 그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일상의 모습은 항상 갈등하고

아직도 허욕에 고통받는다. 

 

 

         

 


근처 다른 미술관에 잠시 들린다.

이용휘의 작품 전시회.

 

그의 산수화에는 낚시하는 그림이 많다.

그리고 '찌'를 그려놓는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에게 '찌'는 낚시 그 자체의 상징이다.

 

 

 

         

 

한가한 5층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인사동 길목은 항상 오가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 길목에서 사람들은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기도한다.

사람과의 만남은 항상 기억을 동반하고,

그래서 그 기억에 따라 감정이 흔들리기도 한다.

 

인생이란 어차피,

끊어질 수 없는 기억의 끈을 가지고 추억하며 사는 것.

늦은 시간, 인사동 작은 카페 '흐린 세상 건너기'에서

한영애가 갈라진 목소리로 부르는 '봄날은 간다'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인사동을 벗어나는 길에 - 아픈 추억'

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사람이 있다.

내가 요새 석고문을 배우는 선생님이다.

지난 12월, 전국휘호대회 작가 작품전이 열리는 날.

그녀는 인사동에 다녀오면서 쓴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한때 대상후보에 올랐으나 낙관을 떼고는 우수상도 아닌 특선에 머물고,

그후 입선과 특선을 오가며 10점이 되어 초대작가 요건이 되었을 때

초대작가 규정이 12점으로 변경된다.

그 해에 특선도 아니고 가까스로 입선이 되어 11점이 되었으나,

이후에는 그나마 아무 상도 받지못하고, 결국 작가가 되지못하였다.

그 모자라는 1점이 앞의 10점보다 어렵고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것...


인생에서는 이렇게 우연한 일들이 변곡점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운명이 엇갈리기도 한다.

그녀의 글을 보면 삶의 한 장면에 대한 작은 슬픔,

그리고 그걸 넘어서는 관조와 잔잔한 일상의 모습이 느껴진다.

 

 

때로는 인사동에서

우연히 작가인 젊은 선배를 만나는 때가 있다.

그 우연에 놀란다.

그리고 때로는 그 우연조차 아프다.

 

처음 붓 잡은게 2013년 3월 8일.

붓 잡은지 아직 2년도 못되었지만... 

 

그 시간이 내게는 어쩌면 보석같은 시간이었는지 모르겠다. 

훗날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인사동 걷는 길이 쓸쓸하다.

겨울을 심하게 타는 것 같다.

 

 



*조블 2015/02/04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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