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9월 스코틀랜드 독립투표가 커다란 뉴스였는데,
이는 1707년 잉글랜드와의 합병후 30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갈등이 이어져옴을 의미한다.
문득 '슈테판 츠바이크'의 저서가 생각났다.
"메리 스튜어트 스코틀랜드의 여왕"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1942)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그가 쓴 책들중 내가 읽은 책들,
"메리 스튜어트 스코틀랜드의 여왕"
"체스"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조셒 푸세 -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광기와 우연의 역사"
다른 글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
그의 글은, 역사의 커다란 흐름 속에서 무력하게 함몰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가슴 저리게 그리고있다.
그의 글을 읽노라면 마치 내가 그 역사의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낀다.
그만큼 미묘한 움직임과 심리묘사에 뛰어나다.
그리고 다 읽고나면 항상 슬퍼진다.
스코틀랜드의 독립투표가 다시 생각하게한
"메리 스튜어트 스코틀랜드의 여왕"
마지막에 이 책의 목차를 나열하였다.
'메리'를 이야기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사람 '엘리자베스'
이들의 이야기를 쓴 또 다른 책이 있다.
"라이벌의 역사" (Great Rivals in History), 조셉 커민스 지음.
이 책에는 23편의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하나의 왕국, 두 명의 여왕' 이다.
2.
잉글랜드의 '헨리7세'에게 아들 '헨리8세'와 딸 '마가릿 튜더'가 있었는데,
딸 '마가릿 튜더'가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4세'와 결혼을 한다.
그런데 '제임스4세'는 처남이자 잉글랜드의 왕인 '헨리8세'와의 전투에서 패하면서 죽는다.
'제임스4세'의 아들 '제임스5세'가 왕이 되는데,
자기 아버지를 죽인 외삼촌 '헨리8세'를 증오하나,
'제임스5'세 또한 '헨리8세'와의 전투에서 패하고, 이로 인하여 죽는다.
이때 '제임스5세'의 나이 30세.
그리고 프랑스출신 귀족, 왕비 '기즈'와의 사이에서
딸,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가 태어난지 1주일되던 날이다.
1542년12월.
이렇게 외동딸인 '메리'는 태어난지 일주일만에 스코틀랜드 여왕의 자리에 앉았다.
한편, '헨리8세'가 호시탐탐 '메리'를 자신의 아들과 정략결혼시켜
스코틀랜드를 먹으려는 생각을 하자,
심지어는 납치당할수 있다고까지 생각한 '메리'의 어머니는
'메리'가 다섯살때 '메리'를 프랑스로 보낸다.
'메리'는 어머니 가문의 도움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호화롭게 보내면서도
공부를 열심히하고, 날씬하고 미모에다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하면서
스코틀랜드인이 아니라 프랑스 여성으로 성장했고,
그녀는 이미 당시 유럽 제일의 미녀가 되어있었다.
잠시 다른 이야기지만, 한편
1533년, '헨리8세'와 '1000일의 앤'으로 유명한 '앤 볼린' 사이에 딸 '엘리자베스'가 태어난다.
'헨리8세'는 6명이나 왕비를 바꾸고 그중 두 명을 참수했는데,
'앤 볼린'에게는 간통과 반역죄를 물어 참수했다.
'엘리자베스'는 '헨리8세'의 딸,
'메리'는 '헨리8세'의 누이의 손녀이니,
따지자면 '메리'는 '엘리자베스'보다 9살 어린 5촌 조카딸이다.
'메리'는 태어나자마자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되었지만,
'엘리자베스'는 아버지 사후 여왕이 된 이복자매, '피의 메리' 에게
목숨을 구걸하며 살아야하는 처참한 초년시절을 보낸다.
서녀라는 이름으로 적통을 부인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항상 왕위계승에 대하여 위협이 되는, 모순되는 모습이 '엘리자베스'의 처지.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피의 메리'가 병으로 죽자 드디어 왕위에 오른다.
그녀의 나이 25세. 1558년11월.
프랑스에서 성장한 '메리'는 16살 되던 1558년 4월,
'엘리자베스'가 여왕이 되기 7개월전,
프랑스왕 '앙리2세'의 맏아들 '프랑수아2세'와 결혼한다.
가톨릭 교도들은 '헨리8세'가 왕비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불린'과 결혼한 것은 무효이고
따라서 '엘리자베스'는 사생아이며 '메리'야말로 합법적인 여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메리'의 시아버지인 프랑스왕 '앙리2세'는 잉글랜드 왕위는 '메리'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리'가 결혼한 다음 해에, '앙리2세'가 죽고 '프랑수아'가 프랑스 왕위에 오르면서
그녀는 프랑스 왕비로 화려하게 즉위했으나,
'프랑수아'가 그 다음해인 1560년 12월 어린 나이로 죽는 바람에
'메리'는 18세에 과부가 된다.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는 19살되던 해,
1561년 8월 자신의 왕국 스코틀랜드로 돌아왔으나
이미 프랑스의 안락한 환경 속에서 자라왔던 그녀에게
스코틀랜드의 여러 상황은 그녀가 살아왔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메리'가 스코틀랜드로 돌아올때,
그녀는 자신을 영국해협을 안전하게 건너게해주겠다는 '엘리자베스'의 보증을 요구하는데,
'엘리자베스'는 '메리'가 잉글랜드의 왕위계승권을 포기하는 것을 승인하라고 압박하기도 한다.
그로부터 2년후, '엘리자베스'는 '메리'에게 놀라운 제안을 한다.
'엘리자베스'에게는 어릴적부터의 친구이자
아마도 그녀의 유일한 연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되어지는
레스터의 백작 로버트 더들리라는 사람이 있는데,
'메리'가 '로버트 더들리'와 혼인한다면
'메리'는 왕위계승자로서의 권리와 지위를 이어받을 수 있다는 제안을 한다.
그러나 '메리'는 이를 거절한다.
'더들리'는 신교도, 그리고 왜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결혼을 결정하려한다는 것이냐 하는 반발.
그리고 '메리'는 23살 되던 1565년 7월,
사촌인 '단리'백작과 무분별한 사랑에 빠져 결혼했는데,
이제부터 그녀의 불행한 운명이 시작된다.
'단리'는 인물이 뛰어났으나 그외에는 아무런 장점도 없는 인물.
나약하고 방탕한 야심가.
결혼한지 1년만에 '단리'는 '메리'의 면전에서
'메리'가 신뢰하고 사랑하는 신하 '리치오'를 살해하는데,
'메리'는 자기의 목숨까지도 위협당할 수 있다는 위기를 느끼는 상태에서
아들 '제임스'가 태어난다.
1567년, '단리'가 요양중이던 집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단리'가 목졸려 죽는데,
'메리'가 '단리'의 암살계획을 자세히 알지못했거나 지시하지는 않았더라도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그녀가 내막을 알고있었으리라 믿는다.
'메리'는 3개월후, 암살을 주모한 것으로 알려진 '보스웰'백작과 결혼하게되는데,
이는 '메리'가 저지른 최악의 실수가 되었다.
그러나 이에 반기를 든 귀족들과의 전투에서 패한 뒤,
'보스웰'은 혼자 살겠다고 도주하고,
'메리'는 1살 밖에 안된 아들 '제임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작은 섬에 유폐되고야만다.
1567년, '메리'의 나이 25세.
'엘리자베스'는 태어나면서부터 어린시절을 죽음의 위협속에서 지냈으나
25세에 여왕이 되었고,
'메리'는 태어나면서 여왕이 되어 온갖 영화를 누렸으나,
25세에 모든 것을 잃고 죽음의 위협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메리'는 그후 자신을 흠모하는 청년의 도움을 받아 탈출, 군사를 일으켰으나
결국은 패배, '메리'는 충성스러운 신하 몇명과 함께
145키로를 질주하여 잉글랜드로 피신을 하는데,
잉글랜드의 여왕 '벨리자베스'는
자기의 영역으로 들어온 '메리'를 이 성 저 성으로 돌리며 유폐한다.
이제 '메리'의 운명은 '엘리자베스'에게 달려있게된다.
'메리'는 성에 유폐되어 생활하는데, 그 세월이 무려 19년.
그녀를 감시하는 관리자들은 모두 그녀에게 매혹당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엘리자베스'를 퇴위시키거나 암살하려는
음모의 중심이 되었고,
그 긴 세월의 유폐생활을 하면서
'메리'의 미모는 빛을 잃었고 점차 노쇠해져갔다.
잉글랜드는 '헨리8세'가 '앤 볼린'과 결혼하면서
교황의 승인에 문제가 생기고 나중에 '앤 볼린' 사후
자신이 파문을 당하게되자 성공회를 만들었는데,
교황과 구교도쪽에서는 '메리'가 잉글랜드의 여왕이 되기를 바라고,
이러한 움직임이 '엘리자베스'를 계속 긴장하게 만든다.
더구나 한때 '메리'는 자신이 잉글랜드의 여왕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한 적도 있다.
잉글랜드의 귀족들도 정치적으로 대립되어있었고,
'엘리자베스'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후계자가 누가 되느냐 하는 문제에서는
항상 '메리'가 등장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메리'를 제거하기위한 음모가 진행된다.
유폐된 여왕의 로맨틱한 전설에 매혹된 젊은 구교도 귀족들중 한명이,
'엘리자베스'를 암살하고 '메리'를 탈출시키려는 음모를 꾸미는데,
'메리'를 함정에 빠트리려한 자들은,
암살기도자들의 편지가 '메리'에게 전달되도록하고 '메리'의 승인을 받도록하여
마침내는 이를 적발하여 유죄입증의 증거를 잡아낸다.
그들이, 이제는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없게된 '메리'를 죽이자고 주장한다.
이때 제시되었던 증거가 위조된 것인지 진짜인지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엘리자베스'는 오랫동안 망설인다.
질투와 시기심, 이런 것들로 점철된 오랜 세월이 끝날 때가 된것이다.
'엘리자베스'는 '메리'가 스코틀랜드의 여왕이던 시절,
대사가 오면, 누가 더 예쁘냐, 누가 키가 더 크냐....는 등
시기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언동을 하곤 했었다.
그러면, 대사는 스코틀랜드에서는 '메리'여왕이 제일 예쁘고
잉글랜드에서는 '엘리자베스'여왕이 제일 예쁘다는 답으로 궁지를 모면하기도 했다.
당시 스코틀랜드의 왕은 '메리'의 아들인 '제임스'.
'제임스'는 '엘리자베스' 사후에 잉글랜드의 왕위를 준다는 약속에
자기 어머니의 죽음에 동의 한다.
드디어, '메리'는 참수당한다.
1587년 2월. '메리'의 나이 45세.
지지자들에게는 낭만적이고 비극적인 인물로,
정적들에게는 간악한 요부(妖婦)로 비친 '메리'는
한때 가장 행복했으나, 사랑에 눈멀어 분별없이 충동적으로 남자와 만나고,
어리석은 남자의 유혹에 빠져 모든 것을 잃고
19년의 유폐생활 끝에 드디어는 자식한테도 버림받고 세상을 떠난다.
'엘리자베스'는 그로부터 16년을 더 살고, 1603년에 세상을 떠난다. 70세.
이제 '메리'의 아들,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는
잉글랜드의 왕위를 이어받고, '제임스1세'가 되어 두개 왕국의 왕이 된다.
3.
스크틀랜드와 잉글랜드가 하나의 왕국이 되는 건,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707년.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300년이 더 지난
2014년 9월,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묻는 투표가 있었고,
계속 영국에 남는것으로 결정되었다.
두 여인은 현재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나란히 누워 있고,
현재의 엘리자베스 2세를 비롯한 영국 왕실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모두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후손이다.
4.
"메리 스튜어트 스코틀랜드의 여왕"
슈테판 츠바이크
책의 목차
여왕이라는 저주받은 유산
화려한 결혼식 뒤에 감추어진 음모
엘리자베스 여왕과의 숙명적인 대결
다가오는 위험의 그림자
주변의 남자들을 불행으로 끌어들이다
결혼시장의 신부 쟁탈전
두번째 결혼
여왕의 신분에서 포로의 신세로
복수를 위한 속임수
비극의 제2막
이중 간통
정부를 위해 남편을 살해한 여왕
살인자와 함께 결혼의 제단으로
굴욕적인 세번째 결혼식과 성난 군중
간통한 여왕을 불태워라!
탈출
교활한 여자 엘리자베스
유죄 입증을 위한 함정
몰락한 여왕
타오르는 증오의 불꽃
자기 목에 밧줄을 걸다
적과 아들의 결탁
단두대에 머리를 들이민 최초의 여왕
가장 위험한 거짓말
*조블 2014/10/07 16:11
| 의재필선(意在筆先) (0) | 2016.0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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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동에서 - 김충현 현판서예전 (0) | 2016.01.31 |
| 휘호대회 (0) | 2016.01.31 |
| 비긴어게인, 서예 (0) | 2016.01.31 |
| 쌍둥이 손녀 (0) | 2016.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