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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일상

by 아이현 2016. 1. 18.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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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겠지?

오랫동안 서로 연락하지못해도 잘 지낼거라 생각하며 지내고있어.

 

며칠 전,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봤어.

 

우리 정도의 나이라면, 아마도 '로버트 레드포드'에 대한 환상이 아직 조금은 남아있을 거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의 마지막 장면.

이제 호주로 가자....뛰어나가며 이어서 들려오는 총소리...

<위대한 개츠비>는 '로버트 레드포드'에 대한 그런 추억의 연장선상에 있지.

 

'로버트 레드포드'는 1920년대 시대상에 더 어울리는 분위기의 사람이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남자. 

화려하게 만든 이번 영화에는, 더 어울리는 남자라는 느낌이었어.

 

그리고 그 과장된 화려함은

절망적인 슬픔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

 

 

         

 

         

 

 

영화는, 화자 '닉 캐러웨이'의 회상으로 시작하는데,

흔히 제3자의 회상이라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슬프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왜냐하면 이미 주인공은 죽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암시하고 시작하기때문이야.

 

더구나 화자인 '닉'을 맡은 배우는 <스파이더 맨>의 주인공 '토비 맥과이어'인데

그 얼굴 정말 성실하고 착해보이지않아?

그래서 그가 하는 이야기는 전부 사실인 것 같이 들려.

 

 

         

 

         

 

 

이야기는 잘 알겠지만,

영화 홈페이지에서 내용을 그대로 옮겨오자면,

 

개츠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데이지(캐리 얼리건)

닉 캐러웨이(토비 맥과이어)

톰 뷰캐넌(조엘 에저턴)

 

1922년 뉴욕 외곽에서 살고 있는 '닉'은 호화로운 별장에 살고 있는 이웃 '개츠비'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옥스포드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는 '개츠비'는 어딘가 비밀이 가득한 의문의 사나이.

 

이 베일에 싸인 백만장자는 토요일마다 떠들썩한 파티를 열어 많은 손님을 초대했다.

파티에 초대 받아 참석한 후 '개츠비'와 우정을 쌓게 된 '닉'은

자신의 사촌 '데이지'와 '개츠비'가 옛 연인 사이였던 것을 알게 된다.

 

'데이지'는 가난한데다 전쟁터에서도 돌아오지 않는 '개츠비'를 잊은 채 부유한 '톰'과 결혼한 상태이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 '톰'은 정비공의 아내와 은밀한 사이였고,

때마침 '개츠비'와 재회하게 된 '데이지'는 잊혀졌던 사랑의 감정을 되살리는데…

 

 

 

 

짧게 이야기하자면,

<위대한 개츠비>는 '미친 사랑'에 대한 이야기야.

더 부연하자면, '미친 사랑의 파멸'

 

현실에서도 세상 어디에나 가난한 남자의 슬픈 사랑은 있어.

그러나 광기어린 사랑때문에 파멸로 가는 사랑은 그리 많지않겠지.

'개츠비'의 사랑은 광기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어.

 

가난하기때문에 헤어진 여자.

'데이지'는 가난한 남자가 차지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야.

그래서 '개츠비'는 5년전에 사랑하던 여자 '데이지'를 되찾기위하여

불법적으로 부를 이루었지.

 

사람들은 누구나 그가 어떻게 돈을 모았는지는 생각하지않아.

다만 현재의 화려함을 보며 동경할 뿐이지.

 

 

         

 

 

'개츠비'는 '데이지'가 사는 집이 보이는 만의 맞은편 저택에서 살면서

항상 축제와 같은 파티를 벌이며

어느 날인가는 '데이지'를 만날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그녀와의 만남을 기다리지.

 

'개츠비'의 파티는 정말 화려하기 이를데 없어. 

영화감독 '바즈 루어만'은 영화 <물랑루즈>를 만든 사람.

 

그는 아마도 극단적인 화려함을 통해서

이후 벌어지는 비극의 결말을

더 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 

 

 

         

 

 

부를 가진 남자가 보여줄 수 있는 침착한 표정과 여유로움 속에는

직접 '데이지' 앞에 나타나 만날 수 없는 '개츠비'의 나약함이 감춰져있다고 생각해. 

 

어두운 해변에서 건너편 '데이지'가 사는 집의 초록색 불빛을 바라보면

그의 슬픔이 그대로 전해져오는 것 같아.

 

허공을 향하여 벌리는 그의 손.

허망함....

 

 

          

 

         

 

 

'개츠비'와 다시 만난 '데이지'는 옛사랑의 추억에 빠져들며

'개츠비'와 사랑이 시작되고,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질 듯하지만,

 

그러나 '개츠비'의 끝없는 집착이 '데이지'를 멈칫하게 만드는데,

 

도대체 다시 만난 옛사랑에게,

여태까지 한번도 자신을 잊은 적이 없고

남편이라는 작자를 한번도 사랑했던 적이 없다는 것을

남편앞에서 이야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그야말로

정말 미친 짓이지.

 

'개츠비'의 사랑은 그런 사랑이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들은 광란의 질주를 벌이는데,

인생이란 항상 그렇듯이 우연한 사건에 변곡점이 있는 것이지만,

'톰'의 불륜 상대인 여자가 차에 치여 죽으면서 이야기는 비극적인 파멸을 향하여 가지.

'톰'이 죽은 여자의 남편을 꼬드겨서 '개츠비'를 죽이도록 하는거야.

 

'데이지'가 운전하다 일으킨 사고는 '개츠비'가 뒤집어쓰고,

'데이지'는 마지막 순간에 남편 '톰'에게로 되돌아가는데,

'개츠비'는 그래도 '데이지'가 다시 돌아오리라 생각해. 아니 그렇게 믿어.

그런 믿음은 정말 대단해.

나약한 사람같으면 그냥 절망에 빠질텐데...

 

다음 날, 

수영장에서 '개츠비'는 그녀로부터 전화가 오리라 확신하지만, 

끝내 그녀의 전화는 오지않아.

 

그러나 전화벨이 울리면서 '개츠비'가 전화를 받으러 가는데 들려오는 총소리,

사고를 당하여 죽은 여자의 남편이 쏜 총에 '개츠비'는 죽어.

 

마지막 순간 죽어가면서도, 

'개츠비'는 그 전화가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려는 '데이지'의 전화라고 믿었다고

나는 생각해.

'개츠비'는 정말 위대해. 맹목적인 믿음.

그렇지않다면 '개츠비'가 너무 가엽지않아?

 

그러나 그 전화는 '닉'의 전화.

 

'개츠비'의 장례식에는 '닉'외에 아무도 오지않아.

심지어 '데이지'도 남편 '톰'과 함께 여행을 떠나버려.

 

 

         

 

 

왜 '개츠비'는 위대한 '개츠비'인가? 

 

그는 오직 한가지, 사랑에만 집착하고 몰두했지.

사랑도 미친 사랑. 끝까지 그 사랑을 믿은 '개츠비' 

미친 사랑으로 인한 파멸.

사랑에 그야말로 모든 인생을 걸은거지.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어.

 

노래에도 있잖아?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킬리만자로의 표범.

 

옛사랑을 다시 만나본 적이 있어?

다시 만났다면 '개츠비'같은 사랑을 할 수 있겠어?

사랑을 하는 것 만으로 끝나서는 안되고,

죽음으로, 파멸로 끝나야지 비로서 위대해지는거 아닐까?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 자신도 서로 '격'이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지.

가난했던 그는 끝내 부자집 딸인 여인으로부터 버림받았는데,

소설이 자신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는 말이 있어. 아마도 사실일꺼야.

'피츠제럴드'는 자신이 못다 이룬 사랑을 <위대한 개츠비>를 통하여

완성하려 했던 것 아닐까 생각해 봤어.

 

소설 속에서야 자신이 현실에서 이루지못한 어떤 이야긴들 못 이루겠어.

엄청난 부를 일구고 끝내 이야기가 파멸로 이어졌을 때 '피츠제럴드'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위대한'이란 찬사를 보냈지않았을까?

 

 

          

 

 

영화는 극단적인 대비를 통하여 갈등과 절망을 표현했다고 생각해.

부자들의 화려한 저택과 파티, 그리고 집에 가는 길, 정비소 주변의 황량함

축제같은 파티와 그 뒤에서 파티를 바라보는 '개츠비'의 조용한 시선.

 

젊음의 끝없는 욕망과

욕망의 끝, 극한적인 상황에서의 파멸,

영화 <젊은이의 양지>, <태양은 가득히>가 모두 그런것 아난가?

 

영화를 보고나서 느낀건 슬픔이었어.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개츠비'의 욕망이 이해되었고, 그 욕망의 끝이 슬펐어.

적당한 선에서 끝냈어야지? 

이런 이야기를 하니, 나는 아무래도 '위대한' 아무개가 절대 될 수 없는거야, 그렇지?

 

 

다른 이야기할께.

몇달 전, 집사람이 자기가 다니던 미용실에서 꽃을 얻어왔어.

야리야리하게 약해보이는 꽃, 사랑초.

덕분에 갑자기 집에서 다른 화분과 난들의 분갈이도 시작됐지.

 

그런데 화분에 옮겨심은지 며칠만에 사랑초가 시름시름하더니 죽어버렸어.

아니 죽은줄 알았어. 줄기가 모두 말라 화분에 붙어버렸으니까.

 

그러더니 놀랍게도 얼마 지나고나서부터 다시 싹을 틔우기시작하는데

정말 엄청나게 잘 자라는거야.

한동안은 줄기가 뻗어나오는 것을 매일같이 들여다봤어.

어제 밤에 세어봤더니 자라나온 줄기가 30개가 넘어.

 

 

         

 

 

그리고 꽃을 피워내는데 너무 아름다웠어.

낮이면 잎과 꽃을 활짝 열어서 해가 있는 방향으로 온 몸을 기울여.

그리고 밤이 되면 세 쪽의 이파리가 다소곳이 잎을 접어, 꽃도 마찬가지.   

 

집사람과 사랑초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아, '사랑초'라는 시집이 있어, 했는데

나중에 책장에서 찾아보니 '사랑초'가 아니라 '사랑굿'이었어.

 

 

         

 

 

사랑은 아름다워, 아픔을 가지고 크는 꽃과 같아.

그러나 너무 물을 많이 줘서 꽃을 죽이기도 하지.

넘치는 사랑이 사랑을 파멸로 이끌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남자는 모든 것을 걸 수 있지만, 여자는 그렇지않아.

'데이지'를 봐, 옛사랑을 만나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가지는 않아.

 

혹시라도 늦은 나이에 다시 사랑을 한다면

내 말, 잘 생각해 봐.

 

이제 더운 여름이야.

잘 지내. 

 

 


*조블 2013/06/2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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