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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by 아이현 2016. 1. 15.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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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일이 그렇듯, 시작은 사소한데서 처음 감지되었다.

골프를 치는데 후반에 갑자기, 오른쪽 가슴에 가벼운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힘겨울 정도는 아니었다.

9월26일 이었다.

 

다음날, 집근처 병원에서 증상을 이야기하고 일단 X-ray를 찍었다.

내심 두 가지가 떠올랐다.

 

항상 담배를 태우니 본능적으로 흉통은 폐와 연관되어 걱정이 된다.

또 다른 하나는 골프를 치면서 간혹 일어나는 갈비뼈의 스크래치다.

30년전 골프를 시작하고 한창 실력이 일취월장할 때,

어느 날 골프를 치다가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왔다.

무리해서 골프를 마쳤지만, 이후에도 계속 골프를 쳤다.

매주 2번내지 3번 골프를 칠 때였는데, 다운스윙과 임팩트때 가슴통증이

온다는 것이 미리 예견되어있어서 강하게 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대충 시늉을 하면서 치고, 내기 골프에서 매번 돈을 잃었다.

한달쯤 뒤 결국은 병원에 갈 수밖에 없었는데,

병원에서의 판정은 골프를 치다 무리해서 뼈가 살짝 나갔다는거였고,

의사가 놀란 것은 한달전에 상처를 입었는데도 그 고통을 이겨내면서

계속 골프를 쳤다는 사실, 그리고 이제는 거의 뼈가 아물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동네병원 의사는, 뼈에는 이상이 없다며 진통,소염제 등

5일분 약을 처방해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5일후에도 낫지 않는 것이었다.

추석 지나고, 다시 병원에 가서 3일분 약 처방전을 받았다.

의사에게 담배를 이야기하며 혹시 폐 쪽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것을

걱정하며 물어보았는데, 의사는 3일 후에도 차도가 없으면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2.

다시 약을 3일동안 먹었는데도 오른쪽 가슴의 통증은 묵직하게 계속되었다.

마침 집사람이 한달 전부터 계속 폐검사를 받아보라고 하던 중이었다.

다시 말이 나오기에 일원동 삼성병원에 폐건진을 신청했다.

진단은 삼성병원, 치료는 아산병원, 연구는 서울대병원,

그리고 장례식장은 어디던가...이런 이야기도 있으니...

건진일자는 10월19일.

 

마음이 갑자기 조급해졌는데, 가장 빠른 날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다음 날,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 받았다.

그의 발병소식은 3-4개월쯤 전에 들었는데 폐암진단후 몇개월만에 죽은 것이다.

처음에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폐암이 이미 뼈로 전이가 된 후의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를 문상가면서 세상을 뜨기에 아직은 이른 나이를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는데,

한편 나를 옥죄는 불안감은 한층 더 커져갔다.

 

인터넷을 뒤져 폐암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여러 증상이 있는데, 잦은 기침, 호흡곤란, 가슴통증, 객혈 또는 혈담,

그리고 전이가 된 경우에는, 쉰 목소리, 어깨 통증...등이 중요한 증상이었고,

그런 증상이 나타나서 폐암진단을 받는다면,

이미 폐암이 상당히 진전된 상황이라는 것이 일관된 내용이었다.

 

내 경우를 따져보니, 더욱 불안하다.

아주 특별히 잦은 기침은 아니지만 담배를 피워댔으니 기침과 호흡은 항상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했고, 가슴통증이 계속되는데다,

약 2주전부터 내 목소리가 쉬었다고 집사람이 몇번인가 감기걸렸나

하던게 또 떠오른다.

게다가 왼쪽 어깨가 아파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게 벌써 두달 정도?

그리고 어깨통증은 최근에 더 심해지고있었다.

몇가지 증상만 봐도 완전 폐암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더욱 치명적인 확인은 곧 나타났다.

10월11일,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화장실에 갔다가

가래가 올라 뱉었는데 가래와 함께 피가 보였다.

하얀 변기에 빨간 피의 가래는 그 색상이 너무나 선명했다.

막연한 불안이 절망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거의 포기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기침을 크게하면 오른쪽 가슴의 통증이 크게 느껴졌다.

 

동네병원에 가서 종합병원에 갈 수 있는 진료의뢰서를 받아왔다.

골프약속 2개는 이미 취소했다. 그리고 혼자 산에 다녔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근처 다른 병원에 한 번 더 갔다.

자세한 이야기는 않고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단순 근육통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내 스스로 이미 잘 알고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위안도 되지않았다.

3일분 처방약을 먹으면서 통증이 없어졌지만 약을 끊은 후 통증은 다시 되돌아왔다.

 

 

3.

불안은 커져갔다.

건진이 예정되어있는 10월19일, 금요일까지 기다리고,

또 다시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이미 내 몸속의 암은 마구 커가면서

다른 기관으로 전이될 것 같았다.

 

마음이 바빠져서 삼성병원에 전화를 했다.

몇가지 증상이 우려되는데, 진료에 막바로 들어가면 어떨까 하는게 요지였는데,

안내하는 직원이, 일반의사와 특진의사의 진료일정을 이야기하는데,

이야기하다보니 차라리 건진을 기다리는게 더 빠를 것 같았다.

문득, 종합병원은 병이 걸려도 일정잡고 기다리다가 죽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루하고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날들이 지나갔다.

 

인터넷에는 암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도록 많았고,

그 내용은 하나같이 모두 공포에 빠지게만드는 내용들이었다.

소세포암, 비소세포암, 병기에 따른 생존율, 수술과 방사선치료와

전이에 따른 항암치료, 그리고 그 부작용들과 고통...

 

그러나, 10월19일 건진을 받으러 갈 때는 제법 마음이 차분해져있었다.

문진표를 작성하고 객담을 받아갔는데,

이날따라 가래가 잘 나오지않아 충분치 않았다.

엑스레이를 몇장 찍고, 저선량 CT촬영, 폐기능검사를 했다.

CT촬영은 누워서 통속을 두어번 들어갔다 나왔는데, 2-3분 정도.

꽤 간단하네 하고 혼잣말을 했더니,

직원이, 그래도 그동안 한 500장 정도 촬영한겁니다, 하고 설명해준다.

 

병원을 나와 거리를 걷는데, 가로수의 단풍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건진 이후에도 오른쪽 가슴의 아픈 부위를 손가락으로 눌러보면 계속 아팠고,

밤이면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4. 

그런데 건진을 받은 다음주, 친구들과 만나 점심을 먹고

화장실에 갔는데, 가래와 함께 또 피가 나왔다.

절망이 다시 확인되고, 이제는 실날같은 희망도 없어보였다.

내 마음속에서는 거의 단정을 내렸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모두 취소했다.

 

그사이에 폐암투병중이던 친구부인이 마침내 호스피스병동으로 갔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담배 피우지 않는 사람, 여자들도 폐암에 걸린다.

모든 것이 암울하게 보였다.

 

많은 생각이 두서없이 오갔다.

막상 삶에 대한 정리를 생각해보니, 하고싶은 일도 많았고,

해야할 일도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치명적인 상황을 어찌 알릴 것이냐 하는 고민,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줄 내용은 무엇인가...

집사람은 어찌 살건가...

10년동안 불입한 암보험에서는 돈이 얼마나 나올까...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마음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어머니가 살아계신데 내가 먼저 간다는 것이 얼마나 불효이고,

어머니는 이제 누가 어찌 모실 것인가 하는 고민이 가슴아프게 다가왔다.

 

건진결과를 알기위해 약속된 일자는 10월30일(화)이었다.

그사이에 양은 적었지만, 가래를 뱉으면서 몇번인가 미세하게 또 피가 나왔다.

병원에 가기 전날, 어머니를 뵈러갔다.

아마도 당분간은 뵙지못할거다...라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지듯이 아팠다.

 

서점에 가서 암에 대한 책을 샀다.

서울대병원장을 지낸 한만청 지음, <암과 싸우지말고 친구가 돼라>는 책.

간암수술에 성공했음에도 2개월만에 다시 암이 폐로 전이되어

말기 판정을 받았으나, 결국은 기적처럼 이를 극복하고 이겨낸 사람이다.

그리고 오래전에 샀던 <내몸 사용설명서>를 읽었다.

 

광란의 세포, 암.

정상세포와 똑 같던 세포가 어느 순간 광란의 세포로 바뀌며 날뛴다.

내 경우는 담배 때문이다.

모든게 내가 저지른 일이라는 생각에 무력감과 자괴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조바심으로 건진센터에 전화를 했다.

내일 결과를 보기로 예정되어있지만,

여러가지 증상이 좋지않게 느껴져 결과를 미리 알고싶은데,

혹시 전화로 오늘 결과를 알 수 있겠느냐고 물었는데,

전화상으로는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이다.

다만, 만약 이상 소견이 있을 경우에는,

보통의 경우, 미리 전화를 해서 내일 꼭 결과를 보러 나오시라고 연락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아무 연락이 없으면 별 문제없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리 신빙성있는 이야기로 들리지는 않았다.

게다가 영상의학과 선생들이 일정을 감안해서 전날 자료를 정리한다고 살명하니,

말이 서로 맞지않는다.

이야기하는 안내원도 자신있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제는 투병생활을 시작하거나 혹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삶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수면제를 먹고 억지로 잠을 자려했지만, 밤 2시에 다시 깨어났다.

 

 

5.

10월30일, 화요일, 마침내 결과를 확인하러 가는 날이다.

오후 1시50분.

암센터 4층에서 결과를 확인한다.

 

병원에 가기 전, 집사람이 물었다.

불안하우?

치명적인 증상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순간, 마침 이때 조금은 암시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기껏, 음, 좀 불안해...하는 정도의 표현으로 끝났다.

 

날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제 달리보이는 세상이 될거라는 생각에 조금 슬펐다.

 

4층 상담실로 가는데 내 발걸음이 무거웠다.

암센터 건물의 내부는 화사하게 아름답고,

창밖에 보이는 나무는 무성해서 생명력이 넘쳐보였다.

 

마침내 상담실에서 의사와 마주앉았다.

30대중후반의 여의사였는데, 교수라고 쓰인 명찰을 달고있었다.

책상 위에는 건진결과자료가 파일로 준비되어있었고,

의사는 컴퓨터에서 폐CT사진을 계속 움직이며 보고있었다.

화면을 의사와 같이 볼 수있는 배치였다.

 

폐기능은 정상이예요. 의사가 말했다.

(...담배를 피워댔는데... 폐기능은 정상이지만,

그래도 암이 있다는 거지...? 나는 인내하며 의사를 바라보았다.)

폐 CT도 정상이예요.

(순간 나는 멍해졌다.)

이게 2003년에 찍은 CT인데, 그때와 비교해서 달라진게 전혀 없어요.

즉 괜찮다는 이야기지요.

(의사가 멍해져있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폐기능도 정상이라는데 왜, 마음에 안드세요?

 

그 말에 비로서 나는, 문진표에도 썼는데

가래와 함께 피가 나오는건 무슨 상황이냐고 물어봤다.

그 말에 의사가 잠깐 갸우뚱...하더니,

그러면, 김OO 교수에게 한번 진단을 받아보겠냐고 물어왔다.

김 교수는 현재 삼성병원에서 이 분야 최고수준의 의사 두어명중 한명인 듯하다.

2003년 당시 내 폐CT를 가지고 나에게 이상없음을 판단해준 사람이다.

날짜를 잡았다.

 

원래 그는 암확진을 받은 환자만을 주로 보는 사람이다.

내 경우 진료가 가능하겠냐, 2003년에 김 교수님께 진료받은 기록이 있으니

진료를 받을 수 있지않겠냐는 이야기 등등이

이쪽 건진센터와 저쪽 진료과쪽으로 오가더니, 예약이 확정되었다.

 

건진센터 판정의사가 정리한 이야기에 의하면,

폐기능 정상임(폐기능이 정상이라는 건 좀 놀라운 사실이었다.)

객담결과 이상없음.

폐CT결과 이상없음.

다만 혈담이 있기에 더 확인을 요한다.

추가로 예상되는 것은, 김 교수가 결정할 사항이겠지만, 아마도

기관지내시경, 혹은 저선량이 아닌 폐CT, 가 아닐까.

다만, 저선량CT에서 이상없음이 나왔기 때문에, 추가검사에서 문제가

확인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장기에 전이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내용이었다.

 

병원을 나선 후에도, 머리가 텅 비는 멍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다시 사는 걸까.....설사 암 판정이 나더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초기겠지?....

 

 

6.

11월2일(금), 다시 병원에 갔다.

김 교수의 진료실은 암센터 2층에 있다.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지레 짐작해서 그런지 거의 암울한 분위기들이다.

내 앞 차례에서 2명이 들어가더니, 얼마후 한 명이 나왔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서 다른 한 명, 아마도 먼저 나간 환자의 보호자 인듯, 이

나왔다. 드라마 속의 한 장면같다. 아마도 무거운 이야기가 오간듯하다.

심각하고 어둡다.

 

이윽고, 나는 김 교수와 마주앉았다.

그는 자신의 실력에 대해 자신감이 느껴지는 풍모에

차분하고 점잖게 보여, 왠지 신뢰가 느껴지는 의사였다.

아마도 기관지내시경 정도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것 같다는 예감과 각오는

이미 내게 되어있었다.

그는 2003년도와 이번에 찍은 내 CT화면을 계속 살피고있었다.

 

피가 나온다고요? 어떻게 나오죠?

그가 물었다.

나는 그동안의 과정을 정확하고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그가 판단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정확하게 전달했다는 느낌이었다.

평상시 먹는 비타민 등의 약에 대하여도 이야기했다.

그는 조용하게 내 설명을 경청했다.

그는 내게 입을 벌리라 하고 목구멍을 관찰했다.

 

그리고나서 드디어 그가 폐CT화면 2개를 비교하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그의 첫 마디는 간단명료했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그리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정밀하게 페CT까지 찍었는데 이상이 없습니다.

2003년도와 현재를 비교, 이상이 없습니다.

폐가 조금 두꺼워진 부분이 보이는데, 이것은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입니다.

다만 식도가 약해서 조금 헐었습니다.

피는 그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수년동안 매일 복용하신 아스피린은 2주정도 끊으시고,

그 이후에는 매일 먹지말고, 주 1-2회 정도만 복용하십시오.

보통 좋다고 먹는 약이나 진통제에는 대부분 부작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슴의 통증은 파스 사서 부치면 됩니다.

운동은 너무 과하게 하지 마시고요.

결론은, 지금은 아무 약도 드시지마세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의 최종판단으로, 절망에서 다시 살아왔는데도 나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사치스러운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지만, 기쁘다는 마음은 없었다. 

그저 멍한 상태가 되었다.

아마 그동안의 절망이 너무나 컸고 기간이 길었기에

정상적인 희로애락의 감정이 모두 메말라버린것 같았다.

 

병원을 나서는데, 친구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전 내내 연락하는데 왜 대답이 없냐? 고.

지금 추어탕 집에 있으니 빨리 오라고....

친구들과 만났다.

 

 

7.

책을 보았다.

암에 대한 많은 글을 읽으면서,

그동안 길게는 40일, 짧게는 20일 정도의 과정을 돌이켜본다.

 

이번의 일이 내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이제부터는 겸손하게 살아야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동안 죽음을 심각하게 예견하면서 내가 진정 하고싶었던

많은 것들에 대하여 생각한다.

 

그제는 왼쪽어깨의 통증때문에 병원에 다녀왔다.

미루어왔던 어깨치료를 비로서 시작했다.

 

어제 저녁에는 강남성모병원에 갔다.

친구부인이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긴건, 작년 6월 폐암진단후 1년 5개월만이다.

친구는 부인의 곁을 지키고있다.

몇시간 같이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덧없음을 다시 느낀다.

그를 위로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혼자가 된다, 특히 절망 앞에서는.

 



 

*조블 2012/11/07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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