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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자의 슬픔

일상

by 아이현 2015. 12. 2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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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라고 믿고있었다, 그 때 까지는.

그러나 세상은 어느 것 하나 고통 아닌 것이 없었다. 

어느 곳에도 길은 보이지 않고 나는 쓰러질듯 휘청거리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갈 때 남겨진 사람이 아파야하는 고통은

훗날 추억하듯이 그리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현실의 그것은 연속극 드라마처럼 폼나지도 혹은 아련하게 분위기있는

그런 슬픔도 아니었다.  우리 드라마의 연인들은 어떤 슬픈 상황에서도

그 의연함을 잃지않고, 절제된 표정으로 이별을,

그리고 '버려진다는 아픔' 의 시련을 이겨내지만,

우리 현실에는 배경음악 하나, 세련된 대사 하나도 없이

삭막한 도시의 거리에 버려지듯이 그저 던져져버리는 것이다.

 

- 기다리겠어, 언제까지라도.

-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건 아니야.

아픔을 속으로 인내하며 의연하게 '잠시' 떠나는 연인들은 이렇게 떠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위대한 사랑의 운명이 결국은 그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고,

인내했던 사랑이 보상받지만, 그러나 현실의 나에게

이런 운명적인 재회의 예정은 없는 것이다. 

나는 드라마의 연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그녀는 떠나가고, 떠나가면 그것으로 끝일 뿐이다. 

 

- 기다리겠어, 언제까지라도...  

마지막 말을 이렇게 던지며 등을 보이고 의연하게 떠나기에는,

나는 너무나 절박하였다.  

- 왜? 왜 가야하는데...  

가야하는 이에게 무슨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무엇보다 나는 가난했고, 또 이 바꿀 수 없는 운명보다 더 큰 죄는

그녀에게 희망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학교를 다니기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여야하는 일들은 내 많은 시간을 앗아갔고,

그녀에게만 전념하여 사랑을 보여주기에는 나도 이미 지쳐있었다. 

내가 꿈꾸는 미래의 자산은 아직 보증되어있는 것은 아니었고,

내가 읖조리는 시들은 한줌 빵보다 무가치하였다. 

꿈꾸며 이야기하던 미래는 말하는 내 스스로에게 조차도 허망했고 오직

그녀와의 대화 속에서만 잠시 존재하던 꿈이었다. 

내일이라도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것임을 나도 아는데 그녀가 어찌 믿을 수 있었으랴.

 

- 왜? 왜 가야하는데...

나는 알고있었다.

나를 좋아하였던 그 이유들이 이제는 모두 그녀가 내게서 떠나야하는 이유가

되어버린 것을. 

한 때 그녀에게는 가난조차도 하나의 아름다움이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비극의 연인들처럼 고귀한 사랑을 하고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러한 사랑을 먼 훗날 추억하기위해서 였을 수도 있겠다. 

나를 사랑했던 그 이유들이 이제는 나를 떠나야하는 이유가 된다면

그건 사랑이 변한 것일 뿐.

 

- 왜? 왜 가야만 하는데...

부질없는 물음이 마치 나에게 남은 유일한 생명줄이라도 되는듯이, 그래서 그녀가

나의 이 물음에 답할 수 없다면 그녀가 가려던 걸음을 돌려서 내게 다시 돌아와야하는,

그런 절대의 신물이나 되듯이, 나는 그 물음에만 계속 허덕이며 매달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일어섰다.

- 다 이야기 했어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어요.

이제 그 허망하고 무의미한 물음에 더 이상 대답하려는 최소한의 시도나, 위로나,

예의조차도 던져버린 것이다.

더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어.  그녀는 아마도 지치고 화가 나 있었으리라.

 

- 잠깐만...  

그러나 나는 더 무슨 이야기를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아니, 진작부터 그녀가 헤어짐을 꺼냈을 때부터 이미 나는 알고있었다,

그 어떠한 말도 이유도 논리도 모두 소용없다는 것을.

그러나 그녀가 떠나는 것이 단지 내 가난만으로 떠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알고있었다.  그녀를 그동안 무겁게했던 많은 일상들이 그리고

그녀의 집안이 풍파에 휘말리면서 이제는 그녀도 지쳐있다는 것을. 

그녀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내게 사랑을 주었고

이제까지 나에게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여주었다. 

이제 그녀를 내가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내가 등짐처럼 지고있는 이 가난마저도 사랑할 수 있었던

그 도도했던 지난 날 자신의 기품을 이제는 더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그래서

이렇게 헤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에 더 화가 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곧 닥쳐오기로 예정되어있던 이 순간은, 애써 눈 감아오던 예정된 순간은 이렇게 왔고

더이상 매달리는 것은 무용했다. 

그러나 아직도 놓지못하는 내 구차스러움이 시간을 끌고있었다.

 

- 나에게 시간을 좀 줘.  내가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을, 그리고 다시 이야기 해.

나는 거짓말을 하고있었다, 마치 죄지은 자가 참회하듯이 비참하게 그렇게.

정리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야, 이미 너는 버림받았고,

정리는, 그건 난 모르는 일이야, 그냥 네가 견뎌.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그저 순간 나를 바라보는 눈이 잠시, 정지하듯이 나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조금 흔들렸다.

그 것은 연민이었을까?  

 

- 그만 일어날게, 잘 지내, 건강하구.

그 말에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비쳤다.

눈 앞이 흐려지고, 내가 머리를 꺾는 순간 그녀는 일어섰다.

뿌옇게 흐려지는 화면 속에서 그녀는 찻집을 나섰고, 나는 머리를 들어

찻집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거리에 붐비는 사람들은 나의 슬픔을 알지못했다.  나는 하릴없이, 아무 것도 아니야,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낯설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이제는 영영 다시 그녀를 볼 수 없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순간 눈에서는 참아왔던 눈물이, 버림받은 자의 슬픔이 그렇게 복받치듯이 흘러나왔다.





*조블 2005/11/24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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