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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리오의 법칙

일상

by 아이현 2015. 12. 2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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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리오의 법칙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친구가 며칠 전 물어봤던 이 법칙을 잠시 생각해 본다.

세상에 이보다 더 간명한 법(法)이 있을까?


그런데 응징(膺懲)과 등가(等價)의 기본원리를 가지고 있는 이 법(法)이,

오늘날 야만의 법칙인 양 느끼도록 흔히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치 암흑가의 그 것 인양, 그리고 타파되어야 할 법칙처럼.


<눈>을 공격한 자에게 <눈>을 응징하는 것은, 등가의 것을 응징함으로써

복수하고 이를 통하여 유사한 사례를 예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로써 충분한가?  또는 잘못된 것인가?


<눈>을 처음에 공격당한 자는 그러한 공격을 당해야하는 잘못이나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눈>을 파괴당했다.  그러나 <눈>을 공격한 자에게는 그의 <눈>이

나중에 응징당해야 할 만한 충분한, 혹은 최소한의 이유가 있다.


그러면 처음에 이유도 없이 공격당한 자에게 이 법칙은, 오히려, 얼마나

억울하고 불공평한가?  내 <눈>이 이유 없이 공격당해 파괴되었는데

그 보상은 어디서 받을 것인가? 

공격자의 <눈>이 나중에 파괴된다고 해서 내 <눈>은 보상을 받은 것인가? 

그리고 또 공격자가 만약 장님이라 <눈>이 없다면, 나중에 무엇을 응징해줄 것인가?

어떠한 경우에도 보상되지 않고 또 충분하지도 않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응징하는 것마저도 억제하려는 것이 소위

철학적인 또는 교화적인 인도주의 입장이다.  인간은 충분히 반성할 수 있는

자질이 있으므로 한 때의 잘못을 <탈리오의 법칙>으로 처벌하지 말자는 것이다. 

법에서는 응징과 복수의 논리를 마치 인간의 퇴화된 엉덩이 뼈 정도로만 생각한다.


초창기 법은 너무나 간명하였다. 

수개의 법규만으로도 세상이 규제되었다.

성경은 열 개만으로도 우리에게 충분한 경구를 주었다.

그 열 개도 우리가 따르기에는 힘이 들지만.


이제는 점차 법이 복잡해졌다.

절도죄의 대상은 원래 타인의 재물을 훔친 자 인데, 나중에 유체물(有體物)이

아닌 전기(電氣)를 훔치는 자까지 처벌하려다보니 그 규정이 바뀌거나 혹은

해석이 바뀌어져야했다. 


그리고 이제 법이 복잡해져서 일반인들이 잘 모르다보니 법을 아는 자들이

저들만의 논리로 법을 농단한다.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은 또 무언가?

일반 사항이 아닌, 구체적인 사건에 있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한다. 

법에 그리 있다.

그래서 구체적인 사안에 있어 검찰총장을 지휘했다, 뭐 잘못 됐냐?


모르는 자가 잘못하면, 가르치면 된다.

그러나 아는 자가 그리할 때는 가중의 비난이 타당하리.

모든 법에는 그 법률이 가지고 있는 연혁적(沿革的) 이유가 있고, 또 해석할 때

따라야하는 합목적성(合目的性)의 원칙이 있다. 


이미 법률에 있어 자연법론(自然法論)과 실증법론(實證法論)의 큰 줄기에서,

합목적성을 따지고 천부인권(天賦人權)의 역사적 배경을 조명하여야하는 자연법론이

대세를 이루고 이를 누구도 부정 못하는데,

얄팍한 논리 구조를 가지고 국민에게 허위의 지식을 강론하고 또 이에 부화뇌동하는

식자(識者)들이 있다.  내가 흔히 쓰는 표현으로 이야기하자면, <성경을 읽음을 빙자하여

촛불을 훔치는 자>에게도, 서 푼의 논리는 있는 법.


- 다리 위를 마차는 지나갈 수 없다.

무거운 마차가 지나가면 다리가 무너지기 때문에, 다리를 보호하려고 이 법을

만들었다.  그 때는 마차가 제일 무거웠다. 

그런데, 마차보다 더 무거운 자동차가 나타났다. 

자동차는 지나갈 수 있는가?


법규의 단어만을 고집스럽게 그대로 해석해서, 지나갈 수 있다 하면, 이는 곧

실증법적 해석이다. 

왜 이 법이 만들어졌는지 합목적적으로 해석해서 그 취지를 살펴, 자동차가

지나갈 수 없다고 해석하면, 이것이 자연법론의 한 가닥이다.


그런데, 자동차를 예컨대 사람에 그 외연(外延)을 확대하여, 그러면 자동차를

운전하는 자의 인권(人權)은 어쩌란 말이냐? 하고 벌 떼같이 일어나 외치는

자들이 있다. 

다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이 법을 만들었으니 다리를 보호하는 것이, 이 법이

궁극적으로 보호(保護)하고자 하는 이익(利益)인데, 이제 자동차 운전자의 인권을

보호하자며, 결과적으로는 다리를 부수겠다고 덤비면,

자, 누가 옳은가?


다시 <탈리오의 법칙>을 이야기 하자면,

많은 다른 이론들도 있겠지만, 보편적으로는 법정의(法正義)에 맞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설(說)은 다수설이 아니다.

그러면, 다리를 부수겠다는 자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서지고난 후에 그 때서야 뒤늦게 이 법칙을 생각해 낼 것인가?


- 지금 강의하냐?

- 아뇨.....

- 그럼 뭐하는 건데?

- 그냥...

- 너, 법을 좀 아냐?

- 아니, 의금부(義禁府)에.....

- 니가 거기서 일한다고?

- 아니,,,  끌려 다니면서,, 쪼그려 뛰기만 쫌 했어,

- 근데, 왜 떠들어?

- 얼마 전에 우리 성님이 물어봤던 게, 갑자기 생각나서.....

- 니 성님 스타이루 따라하냐?

- 우리 성님이, 좋은건 항상 따라 배우라캐서....

- 니 성? 벌써 잊어버렸어.

- 엉?  나, 그럼 지금 <뒷북>친 거야?

- 답을 꼭 들어야 아냐?  <아이>가 <현>명하지 못하고 어리석기는.....




*조블 2005/11/1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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