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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에 다녀오면서

일상

by 아이현 2015. 12. 2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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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에 다녀오면서 

 

지난 주말에는 큰 아이가 군복무하는 강원도 양구에 면회를 다녀왔다.  

요새는 군대도 옛 같지가 않아 부대개방이라는 행사가 있는데, 말하자면 학교 기숙사의  

오픈하우스 비슷한 행사이다. 

 

지난 번 면회갈 때는 춘천을 거쳐서 갔는데, 그때 집사람이 오음리 지나서부터 굽이굽이  

소양호를 끼고 도는 길이 어찌나 서럽던지 내내 울면서 가길래, 이번에는 양평, 홍천을  

돌아가는 길을 택했는데, 신남에서부터 꺾어져 양구 들어가는 길이 결국은 오음리에서  

들어가는 길이나 진배 없었다. 

 

인제, 원통, 양구 등 지역이 똑같은 오지라서 옛부터 지명을 넣어서 우스개 소리를  

하였는데, 최근에 양구까지 넣어서,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그래도  

양구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네‘ 라고들 한다고 들었다. 

 

우리 때와는 달리 길이 좋아져서 가는데 2시간 반 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섬처럼  

떨어진 오지라는 느낌은 자식 보낸 부모의 마음을 많이 아리게 하였는데, 하루밤을 같이  

지내고 어둠이 내려앉는 산과 소양호를 돌아오는 밤길이 더더욱 많이 처연하였다. 

 

양구는 내게도 잊을 수 없는 곳 이다.  

나도 양구에서 군복무를 하였는데, 큰 아이도 내가 근무하던 바로 같은 사단 그 연대에서  

근무를 하고 있으니 우연치고는 정말 희한한 우연이리라. 연대 위병소에서 필요한 절차를  

마치고 영내로 들어가는데, 내가 30여년 전에 있었던 바로 이 곳에 내 아이가 있다는  

생각과 옛날 내가 근무하던 그 시절의 감회가 뭉클 솟아났다. 

 

내가 근무하던 시절, 휴가나왔다 돌아가려면, 춘천까지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포장도 않된 길을 따라 양구로 갔는데 그때 그 까마득했던 내 젊은 날의 청춘, 희망과  

절망감, 그리고 사랑...  

그때, 그 절해고도와 같은 곳으로 친구가 면회를 왔다. 격리되어 있다는 절망감은  

친구와의 만남으로 많은 위로를 받았지만, 그러나 돌아간 후의 더 큰 외로움으로 많이  

괴로웠고, 서울의 번화한 불빛이 한없이 보고 싶었다. 그러니 나는 친구 H의 몸부림을  

이해할 수 밖에 없다. 

 

H는 나와 같은 사단에서 근무했는데, 내가 있던 연대보다도 10키로 정도 더 산골로  

들어간 포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H는 부대에서 외박을 나와도 특별히 갈데가 없으니  

내 부대로 나를 찾아왔고, 내가 머무는 곳에서 같이 자고 다음날 아침 자대로 돌아가곤  

했는데, 그때도 지금처럼 술을 많이 마셨다. H는 그때 한창 쫄병의 고통과 설움을  

겪고 있던 시절이었고, 나는 나름대로 형편이 조금은 나을 때여서, 나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H가 외박나와 나한테 왔는데, 공교롭게도 바로 그 다음 날이 내가  

제대하는 날이었으니, 그걸 모르고 찾아온 H의 절망감이 얼마나 컸을까.   

그날 밤 엄청 폭음하고 다음날 아침, 귀대해야되는 H를 위로하고 헤어져 부대로 돌아와  

제대 준비를 하고있는데, 1시간쯤 지났을까, 위병소에서 전화가 왔다. H일병이라는  

쫄병이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거의 인사불성 상태로 위병소에서 행패를 부리며 나를  

찾고있다는 것이다. 놀라서 뛰어 내려가보니, 부대앞 가게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가  

부대에 가는걸 포기한 H가 나를 보고 울면서 자기는 못들어가겠다는 것이다. 

 

겨우 겨우 달래가며 내 부대로 다시 데리고 돌아와보니, 이미 H는 귀대시간에 맞추어  

자대복귀 하기는 글렀고, 돌아가는 길목마다 검문소를 무사히 지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제대 준비고 뭐고 다 제쳐놓고, 선임 중사님께 부탁하여, 부대에서 차고다니던 권총이고  

뭐고 모두 다시 차고서는 차를 빌려달래니, 중사님이 너 혼자 가서 해결할 수 있겠냐며,  

같이 가자는 것이다.  정말로 고마운 분이다. 

 

끗발좋은(?) 부대차에다 뇌물(?)까지 몇가지 급하게 챙겨가지고 포대로 데려다 주고는,  

H를 끗발좋은 중사님 친구의 동생으로 위장(?)하여 겨우 겨우 수습하고, 부대로 돌아와  

제대를 하고 양구를 떠났다. 친구 H의 후일담은 나중에 더 있고 H의 제대 후에 이야기  

들었지만, 어찌됐거나 나는 제대하던 날의 푸닥거리 덕분에 춘천까지 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서울에 도착하니, 통금이 있던 시절이라 인천 집까지는 도저히 내려갈 수 없었다. 

 

그 때 동진이는 북창동 유성빌딩에서 대학생의 몸으로 이미 유흥업(?) 사업을 하며  

빌딩 맨 꼭대기 층 살림집에 기거하고 있었는데, 그날 밤 느닷없이 들이닥친 나는  

동진이네 집에서 1박 하고나서 다음 날에야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지나고 나니 모든게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지금 군에 있는 내 아이도 세월이 지나고나면  

모든게 다시 그리워질 것이다. 몇 년전 태풍 제니스가 왔을 때, 양구 파로호의 월명리  

어구말과 소양호 수산리로 낚시 갔던 일은 다음에 또 이야기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200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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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영: 인현이는 그래도 괜찮다(?) 우리 큰애는 5 ~ 6년 뒤에나 군문을 두드릴까?

나는 적근산, 대성산 기슭에 그 끗발좋은(?) 부대 전전하며 지냈는데,

인제/원통/양구 등과 별차이 없는 곳이었다......  면회오는 임무산이 같은 친구도 없었지,

와도 걱정깨나 했을꺼야!!! 그래도 내가 더 낫다. 내 아들놈 군대 갈 땐 모든 환경이

지금보다 좋아지겠지???????  -[12/16-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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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관: 권총차고 군생활이라? 졸병생활 그래도 편히 했을것 같네....  -[12/17-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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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관: 내용을 치다가 줄 바꾸려하니 그냥 올라 갔네. 인현이 면회 갔다온 이야기 들으니

부럽구먼. 우리 아들 녀석은 새해 1월27일 의정부306 보충대로 입영하는데 제대로

잘 적응하고 지낼지 걱정이 되는구먼. 30년전 71년 2월3일 나도 우리 고교 동기 여럿과 함께

입영하여 연천 최전방GOP에서 근무했는데 마침 내가 원래 근면해서(?)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지휘관들로 부터는 사랑받는 작전서기병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제대했다네.

그당시 우리 연대장께서는 나중에 4성장군으로 제대하여 후일 다시 한번 만나뵈올

기회도 있었고 여하튼 군생활 추억은 아련하지만 그래도 좋았던 시절도 있었던것 같습니다.

혹시 우리 아들이 인현이 아들 밑으로 들어가면 잘 좀 봐주도록 부탁하네.

옛날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12/17-09:08]-





*조블 2005/10/0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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