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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일기.12.- 소암기념관

일상

by 아이현 2017. 9. 26.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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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월 서귀포, 무더운 여름.

이중섭 미술관 산책길을 지나 차도로 내려와 길을 건너려다

갑자기 표지판에서 '소암기념관' 을 보았다.


아, 소암기념관이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

내 걸음은 당연히 소암기념관(素菴記念館) 으로 향했다.







2.

소암기념관(素菴記念館) 은 소암 선생의 유족들이 자택을 기증하고,

시에서 그 자리에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2007년 "소암 현중화 탄생 100주년 기념전" 이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는데,

같은 해 11월30일 소암기념관이 건립 완공되었다.







전시실에 가니 마침 소장 작품전이 열리고있었다.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고, 기념관에 계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소암선생 제자의 문하라는 것이 그들의 관심을 끌었다.


전시품에는 내 선생님이 오래전 소암선생께 써서 보내드린 연하장도

전시되어있었다.  반가웠다.

壽與山齊(수여산제) 福隨春至(복수춘지)

수명은 산과 같이 길고, 복은 봄을 따라 이르소서. 


소암(素菴) 현중화(玄中和, 1907~1997) 선생은, 내 선생님의 스승이다.

소암 선생님의 이름은 하도 많이 들어 내 기억에 깊이 새겨져있다.





자료에 의하면,

서귀포에서 태어나 18세(1824년) 도일(渡日)후에는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하고 서예에 정진,

마스모토호우수이(松本芳翠)·쓰지모토시유우(辻本史邑)문하에서 11년 간 사사(師事)하며,

진(晉)·당(唐)고법으로 해서행초는 물론 전예와 육조해에 이르기까지 모든 서체를 습득하는 한편

녹담서원(鹿潭書院)을 개설하여 본격서가로서 토대를 닦았다.


1955년(49세) 귀국후 1957년(51세) 국전(國展)입선을 시작으로

1979년(73세)까지 추천·초대작가심사위원으로 작품활동을 하였다.

70, 80대 '서귀소옹(西歸素翁 :서방정토로 돌아가는 늙은이)'으로 자호(自號)하고

먹고 잠자는일 외 에는 오직 글씨로 독락(獨樂)·귀자연(歸自然)하며

50, 60대 소암예술을 심화 완성하였다.





2007년 "소암 현중화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 

 西歸素翁 의 삶과 예술, <먹고 잠자고 쓰고> (예술의전당 주최, 서울서예박물관) -

전시회 도록 한 권을 가지고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도록을 오랫동안 보고 또 보고했다.




처염상정 (處染常淨)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지만 결코 더러운 흙탕물이 묻지 않는 연꽃을 상징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일이 있어 서귀포에 왔다가 소암기념관에 들렸습니다.

도록도 한 부 가지고왔으니 소암선생님의 글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위에 건강하시기바라며, 간단히 안부를 전합니다.


선생님께서 즉시 답을 주셨다.

제주 소암미술관까지 다녀오셨군요. 반갑습니다.

저도 지난주부터 소암선생님 탁본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주는 거르고 다음주부터는 매주 내려가야할 것 같아요.

높은 사다리를 타서 하는 일이라 공정이 만만치않네요.

삼복더위에 건강히 잘지내시기바랍니다.







3.

마침 소암기념관에서 전성호 전각전이 열리고있었다.

      정식 명칭은, “평생용공(平生用功), 영주십경: 전성호 전각전 田盛昊 篆刻展”.


해설에 따르면,

“평생용공(平生用功), 평생의 임무(일)로 삼다” 라는 뜻의 전시 타이틀은

전성호 작가가 지인에게 보낸 연하장 글이다. 노년의 나이 지긋한 작가가 느꼈을

세월에 대한 회고와 같은 문장에서 삶과 작업에 대한 작가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전성호 작가가 2016년 완성한 전각작업, 영주십경을 전시.

 영주십경은 매계 이한진 (梅溪 李漢震·1823~1881)의 시로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 10곳을 선정  처음으로 이름을 붙이고

그 아름다움을 표현한 시다.


그가 선정한 10경은 지금까지도 제주의 대표 절경으로 손꼽힌다.

추사 김정희의 제자, 조선 말기 제주를 대표하는 문장가였던 매계는 "호남 선비 중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제주를 넘어 당시 조선을 대표할 만한 문장가였다.





전각 篆刻 또한 최근 내 관심분야의 하나.

위 전시회는 정말 대단한 전시다.


영주십경 瀛洲十景 이라는 한시를 전부 돌에 새기고,

한지에 찍어낸 글과, 새긴 돌을 함께 전시하는 것이다. 

하나의 경마다 7언율시이니 56글자.  10경 전체는 560자다.



 

  梅溪瀛洲十景



더구나 위재 전성호(葦齋 田盛昊) 작가는 뇌경색으로 편마비가 된 힘든 상태에서

이 작업을 해냈다. 얼마나 대단한가. 

40여년을 돌과 함께 살아온 인생이다.


전각을 배우고싶어하는 사람들이 작가를 찾아 배우려하다가는

많은 사람들이 중도에 포기를 한다고 한다.

다른 이들은 막바로 전각을 가르치는데,

전 작가는 작은 바위를 깨고 갈아서 인장 돌을 만드는 것부터 시키니

그 과정을 견뎌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 역시 소암선생 문하에서 사사했고, 제자들의 모임인 소묵회 회원이다.





전각 전시회 도록을 들여다보면 그가 각(刻)을 하는 장면이 연상된다.

돌에 집중하는 정성과 열정, 전각도가 돌에 각해내는 장면들.

도록에 실린 그의 작품이 내게도 계속 공부에 자극이 될 것이다.


도록에서 매계시 영주십경으로 묘사한 풍경을 옮긴다.

영주십경(瀛洲十景)에서 영(瀛)은 '바다 영'이다.

한시에 열거하여 시를 쓴 10경이다.

사라봉의 저녁노을, 성산의 해돋이, 정방의 여름폭포, 들렁귀의 봄꽃,

백록담에 겨울지나 남은 눈, 귤림의 가을 경치, 산방산의 굴사,

영실의 기이한 바위들, 오래된 숲에서 기르는 말, 산지포구의 고기 낚기,


이렇게 시를 쓰고나서 마지막에 붙이는 시가 또 있다.

십경을 시로 지었지만 광경이 그러한가

다만 호리병 그렸을 뿐 기이함은 못그렸네

기이한 광경은 세상 사람들 찾기 힘든 곳에 있

사람들이 별나다 하는 모습만 시에 담았네.



소암기념관을 나서니 바로 앞 길가에 글을 조형화한 돌이 보인다.

그냥 돌도 내게는 예사로와 보이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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