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배를 만났다.
대학원에서 유학에 대한 공부과정을 마치고 논문을 준비하고있었다.
후배가 스스로 당호를 후소재 (後素齋) 라 짓고,
내게 현판으로 쓸 글씨를 청했다.
이는 논어 (論語) 의 회사후소(繪事後素) 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하얀 바탕이 있고난 후에야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여기에 따르는 많은 설명이 있다.
먼저 기본이 되는 것을 갖춰야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것이 통설인데, 여기에 다른 설이 있기도 하다.
내가 읽는 박일봉의 논어, 제3 팔일편 (八佾篇 ) 에는 해석이 다르다.
책에 따르면,
그림을 그릴 때에는 흰색을 나중에 칠한다는 말이다, 라는 공자의 말에,
예(禮)는 끝손질이라는 말인가요? 라고 자하가 말한다.
전혀 반대의 설명이다.
어찌되었건, 스스로 당호를 후소재 (後素齋) 로 마음먹은 그의 뜻은
내게도 충분히 전해져왔다.
후배와 헤어지고 근처 봉은사에 들렀다.
때는 부처님오신날 즈음이라 절은 단장으로 화려했다.
심검당 도 둘러보았고,
추사의 마지막 작품, 판전 板殿 앞에서는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낙관에 '칠십일과 병중작 七十一果病中作' 이라 했으니,
71세된 과천 사람이 병중에 쓰다 라는 뜻.
이 글씨가 추사의 마지막 글이다.
2.
얼마전 그를 다시 만났다.
아직 그가 부탁했던 글은 쓰지못한 상태였다.
점심을 하기로 한 약속이었는데, 조금 이른 시간에 만났다.
그가 쓴 논문을 한 권 받고, 그가 최근에 읽기시작한 오래된 한서를 같이 감상하였다.
같이 대학을 다니던 시절,
강의를 들었던 교수님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야기는 하남에 있는 이태리식당 '오스테리아308' 에서 비롯되었다.
블로그 이웃의 글에서 '오스테리아308' 을 읽고,
TV 인간극장을 보면서 좀 더 그에 대한 사연을 알게되었는데,
TV에 나오는 사연중, 노래하는 셰프 의 부친이
저명한 법대의 교수였다는 대목에서 잠시 집중을 하게되었다.
산소에 가는 장면에서 빠르게 지나가던 화면을 뒤로 돌려 정지화면으로 확인하였는데,
묘비에서 교수님을 확인했다. 아, 법철학을 하셨던 교수님이시다.
대단한 인연을 과장할 수는 없지만, 교양과정부때 법학개론 강의를 들었다.
4학년때 법철학을 들어야했는데,
교수님은 당시로서는 매우 희귀하게도 승마라는 고급 취미를 즐기셨는데,
낙마사고로 일찍 돌아가시면서, 내가 다시 교수님께 법철학 강의를 들을 기회는 없었다.
(저희는 학교다닐때 낙마로 인한 사고라고 소문이 돌아 그렇게만 알고있었는데,
최근, 아드님께서 낙마사고는 사실무근이고 뇌출혈로 돌아가셨다고 제게 알려주셨습니다.
이에 사실관계를 정정합니다. 2017.11.13.)
'오스테리아308' 에 가서 점심을 하기로 하고,
예약을 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전화는 받았지만, 화요일은 휴업이라는 답이다.
아쉽지만 다음에 기회를 만들어 가기로 했다.
3.
문득 생각난다.
당시 학교는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는데,
2학년부터는 각 단과대학 별로 흩어져 공부를 했지만,
1학년 교양과정부 시절 우리는 태릉 신공덕역 근처, 공대에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청량리까지는 스쿨버스를 타고 나왔다.
법철학 교수님은 수업이 끝날때면, 우리에게,
함께 전부 같은 버스를 타고 가지말고, 나누어 타고 다녀라.
버스에 사고라도 난다면 우리나라의 장래가 그만큼 정지되니
나라 전체의 비극이 아니겠는가, 라고 하셨다.
나라의 장래가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될 그대들에게 전적으로 달려있으니
그만한 자부심을 가지라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공부를 하면서 우리는 학교를 다녔다.
공부하면서 자부심으로 가득찼던 청춘을 보낸 친구들.
그런데 출세하고나서는 권력을 탐하면서 결국은 나라를 망쳐 이 지경으로 만든게
바로 그들이 아닌가?
정작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배워야할 것은 그런게 아니었다.
소위 지도자라는 인간들, 그동안 그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봐왔는가?
청문회에 서는 인간들의 더럽고 이중적인 모습들...
그들이 지적받는 잘못들은 평범힌 것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보통의 사람들이 누구나 저지르는 작고 사소한, 일상적인 문제라고 해석하는
같은 부류의 인간들...
가슴이 먹먹해지는 세태다.
소위 배웠다는 자들이 뒤에서 저지르는 추악한 모습들.
나라는 먼저 안에서부터 쓰러진다.
그리고 나라는 민초들이 절대 망치지않는다.
오늘도 끊임없이 추악한 인간 군상들이 나온다.
회사후소(繪事後素) 라, 회사후소(繪事後素) 라....
가끔 슬퍼진다.
그리고 새삼 낚시가 다시 그리워진다.
정민의 世說新語에 의하면,
가난하다가 나중에 부자가 되면, 의리를 좋아하는 이가 드물고(先貧後富, 人鮮好義),
궁한 선비가 뜻을 얻으면, 평소 하던 대로 지키는 이가 드물다(窮士得意, 鮮守平素) 고 한다.
정민의 世說新語에서 일부를 옮긴다.
유관현(柳觀鉉·1692~1764)은 1759년 필선(弼善)의 직책으로 사도세자를 30여 일간
서연(書筵)에서 혼자 모셨던 인물이다. '주역'을 가르쳤다. 사도세자가 죽자 여섯 차례의 부름에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벼슬에 있을 때는 흉년의 기민(饑民) 구제 등 볼만한 치적이 적지 않았다.
그가 세상을 뜨자 김낙행(金樂行· 1708~1766)이 제문을 지어 보냈다.
길어 다 읽지는 못하고, 내용 중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 두 가지(難者二事)를 꼽은 대목만
간추려 읽는다.
이 제문에서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로 꼽은 두 가지는
'먼저 가난하다가 나중에 부자가 되면, 의리를 좋아하는 이가 드물고(先貧後富, 人鮮好義),
궁한 선비가 뜻을 얻으면, 평소 하던 대로 지키는 이가 드물다(窮士得意, 鮮守平素)'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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