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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 편지

일상

by 아이현 2015. 12. 2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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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부대에서는, 일과시간에는 업무로 일과 후에는 TV도 보고 책도 보느라 시간이  

빨리 갔는데, 이곳 분교대에 오니 TV도 없고, 책도 분대장교육을 위한것 외에는  

보지못하게 하기 때문에 어제 11시에 입소한 이후 졸거나 자거나 공부를 하다가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곳 양구도 4월쯤에는 벚꽃이 피다가 금방 져버리고 이제는 푸른 잎이 무성하고  

오후에는 시원한 바람이 기분좋게 불곤합니다. 

아침에도 .... 상의 탈의한 채 구보는 -5도C 이상이면 꾸준히 했지만 ....

구보하는 것이 그다지 춥지만은 않습니다. 

 

어제 입소하는 날 보충역들이 4주 훈련을 마치고 가족, 애인, 친지들과 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주변의 병장들은 다들 웃었지만 제 마음 한 구석에서 부럽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습니다.  이제 부대에서 일과 끝나고 여유시간도 많이 있고,  

못할 것도 딱히 없지만, 그래도 동사무소에서 집으로 출퇴근하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훈련받고 있는 신병들.... 훈련병들의 모습에서 1년여 전의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전보다 훈련병의 생활이 좀 더 나아진 것 같지만 긴장한  

모습에 목소리도 우렁찬 그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280일 남은 저도 갑갑한데 이제 갓 입대한 그들은....    

이곳에 오기 전에는 이곳에 와서 훈련병들의 모습을 보면 제 마음의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그들의 모습을 보니 제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어서 스스로를  

측은하게 여기게 됩니다.   이러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됩니다. 

 

부대에서는 책을 이리저리 읽는데, 최근에는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었습니다.   

남,녀 작가가 서로 편지를 주고받듯이 서로의 이야기를 써서 주고받았다는 구성자체는  

매우 특이했지만 사실 내용자체는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섬세한 필치로 그려간 피렌체와 밀라노의 풍경은 ‘로마인 이야기’를 계기로  

이탈리아에 꼭 가봐야겠다고 한 결심을 한층 더 강하게 해주었습니다.   

과거의 것이 보존되어있고, 그 안의 사람들도 그것을 보존하기 위해있는 피렌체의  

두오모도 꼬옥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 안의 세계에 푹 빠져있을 때는 정말 행복한 기분이 듭니다.  

일과시간에 문득 내가 이곳 강원도 양구에 와있다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에 와있다는 것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뭐, 여기서 사람들하고도 잘 지내고 운동도하고 어울려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면만은 이곳에 완전히 동화되기 힘든 것 같습니다.   

군대야말로 로마인의 효율성, 조직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군에 대한 찬탄은 우리 군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한달에 2~3만원 받으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잘못된 것이겠지만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일과시간에 하고  

일과 후에나 취침시간은 확보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합리로 비합리를 이해하는 것이 무리겠지만 함께 24시간을 보내는 동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맘이 생깁니다. 

 

환절기... 아직까지는... 에 감기 조심하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빌며 마치겠습니다. 

 

2004년 5월 2일  

양구에서 원 올림




*조블 2005/10/09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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