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불이선란(不二禪蘭)

일상

by 아이현 2016. 1. 31. 12:17

본문




아침저녁으로 선선하지만

한낮엔 여름.

 

차에서 내리니

추사박물관 경내는 눈부시게 따가운 햇살이다.  

 

         

  

         

   

 

박물관 벽에는 세로로 길게 현수막이 걸려있다.

" 날이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않음을 안다."

논어 자한편의 歲寒然後 知之後凋也,

세한도(歲寒圖)에 인용되면서 널리 알려진 글이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

마지막 세월을 보낸 곳이 과천 주암리의 과지초당(瓜地草堂).

뒤로는 청계산 옥녀봉 자락이다.

 

과지초당(瓜地草堂)이 있던 자리에 2년전 추사박물관이 세워졌다.

추사에 대한 최고의 권위자, 일본인 후지츠카와 그의 후손들이

소장하던 모든 작품과 자료들을 기증하지않았다면

지금의 추사박물관은 없을 것이다.

 

  

영조의 부마집안으로 명문귀족출신의 추사가

부귀영화를 모두 잃고 제주도 8년 유배생활에서 돌아와 살던 곳이

지금의 마포 언저리 강가.

 

그리고 이후

또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를 가서 2년을 지내고 돌아와

이제는 아무것도 남은 것 없이 쓸쓸하게 마지막 3년을 지내던 곳이

과지초당(瓜地草堂)이다.

과지초당은 그의 아버지가 한성판윤 시절에 지어놓은 별저다.

 

 

 

      

   

 

추사는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후세에서는 최고의 걸작으로 세한도(歲寒圖)와 불이선란(不二禪)을 꼽는다.

인생풍파를 겪어나오면서 최고의 작품들이 만들어진다.

 

세한도(歲寒圖)는 제주도 유배시절, 그리고

불이선란(不二禪)은 과지초당에서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불이선란(不二禪)은 추사가 달준에게 그려준 그림이다.

달준은 추사 말년에 그를 보살피던 사람, 잔일도 해주고 먹도 갈아주던 먹동이다.

추사가 편하게 붓을 날려 그에게 그려준 난이다.

 

편하게 그려주니 그의 그림에는 거칠게 없다.

추사도 글에서 이 그림을 한 번 그리지 두 번은 그리지못한다고 했다.

 

 

글에 나오는 소산 오규일은 추사의 제자.

그가 그림에 욕심을 내는 내용이 글에 담겨져 있다.

 

훗날 난으로 유명한 흥선 대원군도 추사에게 난 치는걸 배우러다닌다.

불이선란(不二禪)에서 추사는 난을 초서와 예서에서 비롯된다 한다.

그의 다른 글을 보면 난을 이야기하면서 예서를 강조한다.

 

 

      

 

 

우리의 글도 궁극적으로는 무릇 이러해야하는것 아닐까.

거칠것 없이 쓰는 글.

그러나 이는 어느 경지에 이르러야 가능할 일.

 

과천시절 추사는 친구 권돈인에게

'70년동안 벼루 열 개를 갈아 구멍을 내고 천 자루의 붓을 닳게했다' 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평생에 벼루 한 개를 구멍내기 힘들고 붓 몇 십 자루를 닳게하기 힘드니

그의 천재를 어찌 노력없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랴.

부끄럽다.

 

 

 

불이선란(不二禪)은 난(蘭)을 그린 작품인데

화제에 쓰여있는 유마(維摩)의 불이선(不二禪)을 따서

불이선란(不二禪)이라 한다.

 

자료에 의하면,

유마불이선(維摩不二禪)은 유마경(維摩經) 불이법문품(不二法門品)에 있는 이야기이다. 

모든 보살이 선열(禪悅)에 들어가는 상황을 설명하였으나, 

최후의 유마(維摩)거사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모든 보살들이 말과 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진정한 법이라 감탄했다고 한다.

 

보여지고 말하는 것보다 마음으로 깨닫고 체험하는 것이 

진정한 경지임을 이야기하는 것 아닐까.

 

  

         

 

 

그림에 쓴 글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혹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도 쓰여있어,

격식에는 어긋나지만 전체적인 구도를 본 것이라 설명한다.

 

 

1. 그림의 왼쪽 위

不作畵二十年  난을 치지않은지 이십년

偶然寫出性中天  우연히 본성의 참모습을 그려냈구나.

閉門覓覓尋尋處  문을 닫고 깊이 깊이 찾아드니

此是維摩不二禪  이 경지가 바로 유마의 불이선이네

  

 

2. 그림의 오른쪽 위

若有人强要爲口實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강요한다면 

又當以毘耶無言謝之  마땅히 비야리성에 살던 유마거사가 아무 말도 하지않았던 것처럼 사양하리라 

曼香  만향

 

 

3. 그림의 오른쪽 중간

以草隸奇字之法爲之 초예(草隸)와 기자(奇字)를 쓰는 법으로 난초를 그렸으니, 

世人那得知, 那得好之也  세상 사람들이 어찌 (그 뜻을) 알 수 있으며, 어찌 좋아할 수 있으리.

漚竟又齋 구경이 또 쓰다

 

 

4. 그림의 왼쪽 아래

始爲達俊放筆  처음에는 달준에게 주려고 아무렇게나 그렸으니, 

只可有一, 不可有二  단지 한 번만 가능하고 두 번은 있을 수 없다. 

仙客老人 선객노인

 

 

5. 그림의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吳小山見而豪奪, 可笑  소산 오규일이 이 그림을 보고 얼른 빼앗아 가려는 것을 보니 우습다 


 

 

         


 

박물관의 전체적인 구조는 바닥이 조금 경사지게 지어져있는데,

이는 벼루 모양을 따라 지은 것이라 한다.

밖으로 나오니

커다란 벽면 한쪽은 불이선란(不二禪)으로 장식되어있다.

 

박물관에는 하루에 몇번 문화해설사가 안내를 하며 설명을 해준다.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둘러보았다.

박철상도 한번 와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한다.

  

 

자료중에는 추사가 여덟살때 생부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그리고 아버지가 쓴 답신.

어린 시절의 추사를 잠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세한도(歲寒圖)에 도장으로 새겨진, 장무상망(毋相忘)

"우리 오랜세월이 지나도 서로 잊지말자"

그의 유배시절 외로움이 느껴져온다.

 

 

          

 장무상망(毋相忘)

 

 

         

   

         

   

 


 

*조블 2015/06/09 12:04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블이 문을 닫는다네....  (0) 2016.01.31
서울서예대전과 휘호   (0) 2016.01.31
순이가 떠나갔다  (0) 2016.01.31
회원전  (0) 2016.01.31
여의도 봄꽃축제  (0) 2016.01.31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