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금년의 화두를 생각했다.
묵언(默言)수행,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
대단하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내게 스며든 생각.
묵언수행이라지만,
입을 꼭 닫고 살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시비비에서 비껴서 나 스스로를 수행하자는 것.
한걸음 한걸음은,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말도 있듯이 꾸준히 노력하자는 것인데....
묵언수행은 쉽지않았다.
대화를 나누다보면 잘난척 하는 사람들이 나의 묵언수행을 방해하곤한다.
선생님과 문하생 몇이 식사를 하다가, 선생님께서
글을 쓰는데 골, 근, 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시는데,
옆에서, 흠, 근... 뿌리 근이라...하는 것이다. 이것도 지식에 들어가는가?
이어서 선생님의 이야기는, 창암 이삼만... 추사의 귀양,
이광사가 쓴 현판을 바꾸는 이야기...로 이어졌는데,
중간중간 하도 아는 척을 하면서 이야기에 끼어들고, 심지어 동석한 여자분에게,
뜻을 알면서 이야기를 듣느냐는 등, 정도가 심해서
내가 드디어 묵언수행을 깰 수 밖에 없었다.
전주 명필, 창암 이삼만의, 조필삼십년 부지자획(操筆三十年 不知字劃),
붓 잡은지 30년인데 아직 획 하나 그을줄 모릅니다...
일화를 이야기하며 그의 겸손을 이야기했다.
또한 유홍준의 "완당평전" 을 이야기하면서 이 아름다운 책이 절판될 수 밖에 없었던 연유,
당시 광주은행 차장이던 박철상, 사실 그는 대대로 한학자 집안의 고수,
그가 무림의 재야고수 같이 홀연 등장하여, 200여군데 이상 이 책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드디어 유홍준이 3권의 책을 절판할 수 밖에 없었고 축약본으로 대체하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람이 겸손해야지, 쥐꼬리 같은 지식으로 내세우면 되겠냐고.
세상에 얼마나 고수가 많은데....
엊그제 지방대학에서 교수를 했다는 친구가 (친구가 아님),
학교는 이름 밝히기를 거부,
같이 식사를 하다가,
한 절이 다섯 글자씩으로 된 네 줄의 한시를 보면서,
약간은 가르치려는듯한 자세를 취하면서, 으흠, 오언율시군... 하기에,
또다시 내 묵언수행은 깨졌다.
제대로 알아야지, 이게 오언절구(五言絶句)지 어찌 오언율시(五言律詩)인가?
절이 4개면 절구(絶句), 8개면 율시(律詩)라는걸 모르는가?
....사실 절구면 어떻고 율시면 어떤가, 또 모른다고 무슨 문제가 되랴.
그러나 문제는, 모르는게 문제가 아니라,
모르면서 아는 척하고, 게다가 그 잘못된 걸 가르치려 덤비는게 문제다.
이 친구는 사실 처음부터 좋지않았다.
이 친구는 교수질을 하면서 버릇이 잘못 들었는지, 누구에게나 그냥 반말이다.
선생님은 금년에 77세. 그런데 이 친구는 선생님에게도 그냥 처음부터 반말질이다.
첫날, 배우러 나온 주제에 선생님과 필법에 대하여 논쟁을 하면서 반말질을 하고 떠들기에,
내가 드디어는 화를 참지못하고, 조용히 해, 여기서 혼자 공부하냐, 언성을 높혔다.
이어서, 고려시대에는 정지상 등...오언절구가 많다가,
조선중기 이후에 칠언절구가 많이 나왔다 하기에,
내가 다시, 이보게 내용의 사실여부는 내 모르겠지만, 정지상의 예는 잘못 들었네,
정지상의 유명한 "송인(送人)" 은 칠언절구 일쎄...
아무래도 금년의 내 묵언수행은 지키지 못할 것 같다.
식당에서 본 한시는,
티슈를 담는 사각 나무통의 한쪽 면에
싸인펜으로 누군가가 써놓은 글이었다.
정몽주의 춘흥(春興)
春雨細不滴 ( 춘우세부적 ) 봄비가 가늘어 방울지지도 않더니
夜中微有聲 ( 야중미유성 ) 밤이 되니 조그맣게 소리 들리는구나.
雪盡南溪漲 ( 설진남계창 ) 눈이 다 녹아 남쪽 시냇물이 불었을 테니
草芽多少生 ( 초아다소생 ) 새싹이 얼마나 났을까?
집에 방 하나를 서실로 만들었다.
서실을 만든건, 사실
한걸음 한걸음의 구체적 실천의 하나다.
무엇이든 10,000시간을 하면 뜻을 이룬다는데,
일주일에 3번 글 배우러가서 2~3시간씩 글을 쓰니, 한달이면 30시간.
1년이면 약 350시간. 휴.... 30년을 해야하네.
프로 야구선수나 골퍼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씩 연습을 한다.
매일같이 서너 시간씩 집중적으로 할 의지는 없으니,
수시로 아무때나 생각나면 붓을 잡겠다고 생각하면서 만든 서실이다.
언제라도 글을 쓸 수 있게 큰 탁자 위에 벼루며 연습지들을 제대로 갖춰놓았다.
시간되면 서실에서 글을 쓰거나, 한시집을 읽고 또 한자공부를 한다.
그리고 지난 가을부터 해오던 일이 구정전 작은 결실을 맺었다.
아직은 작지만 꾸준하게 이어지고 커갈 수도 있어서 좋은 시작이라 생각한다.
한걸음 한걸음의 작은 결실.
그런데 막상 하루하루 지나다보니,
한걸음 한걸음이 아니라,
한걸음만 하고 그냥 쉬어가는 날들이 많아진다.
쉬운 일이라면 목표로 잡았을라고,
쉽지않은니 지켜보려는거지....
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한다.
작심삼일은 아니지만, 거의
작심 1개월.
또 이렇게 새해는 지나간다.
*조블 2014/02/07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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