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은 아름다운 산이다.
이름에서 오는 너그러움과 감성이 아름답다.
덕유산(德裕山)은 그 의미가 덕이 너그럽고 넉넉한 산이며,
정상인 향적봉(香積峰)은 향기가 쌓여있는, 향기가 짙은 봉우리다.
안성탐방지원센터에서 오르면 처음 만나는 동엽령(冬葉嶺)은
겨울의 나뭇잎을 이름하는 고개다.
이런 감성적인 지명은 누가 지은 것일까.
1월 6일, 산을 좋아하는 친구 관악과
겨울눈이 쌓인 덕유산으로 갔다.
서울은 이미 영하 10도 아래의 추위가 계속되던 참인데,
오늘은 그보다 더한 추위라 한다.
내려가는 고속도로에 눈이 잠시 흩날린다.
집사람이 문자를 보내왔다.
잘가고있는지..오늘 매거진에 덕유산 나왔는데
눈덮인 산이 환상적이네요 조심해서 다니시길...
아침 10:00 산행을 시작.
안성탐방지원센더 -> 4.5Km -> 동엽령 -> 3.3Km -> 중봉 -> 1.0Km -> 향적봉 -> 0.6Km -> 설천봉
정상까지 총 9.4Km.
며칠동안 엄청나게 내린 눈을 생각하며,
안성 들머리쪽에서 산에 오를 수 있을까,
혹시 등산로가 폐쇄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다행스럽게 등산로는 열려있었다.
버스에서 함께 내린 몇명의 등산객이 먼저 떠나고나니,
사방천지는 눈으로 온통 덮여있는데 사위는 고요했다.
엄청나게 쌓여있는 눈 앞에서 그만 갑자기 막막하게 외로워졌다.
동엽령까지는 4.5Km.
세상은 온통 눈으로 덮여있다.
등산길도, 바위도, 나무도, 계곡도, 계단도 모두 눈으로 덮여있다.
오르는 길이 눈으로 쌓여, 아이젠을 신어도 뒤로 밀린다.
길을 급하게 오르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다.
천천히....
능선에 거의 도착할 때쯤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자,
능선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가 벌써 다르다.
거칠게 몰아치는 바람소리만으로도 몸이 스산해진다.
능선에서 바람과 맞서는건 무모한 일이다.
동엽령 능선에 올라서서 옷을 껴입으려면 그때는 이미 늦다, 라고
어느 산꾼이 쓴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능선에 오르고나서는 배낭을 살피거나 자켓 속에 옷을 더 껴입을 여유가 없다.
갑자기 거칠게 몰아치는 바람과 추위를 한 순간도 견디기 힘들다.
동엽령에서 향적봉까지는 4.3Km.
능선을 따라가는 길이다.
산 아래에서 나무들에 의지하며 바람을 피하던 길은 끝났다.
거친 바람은 능선을 따라 계속 불어올 것이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후 털모자로 뺨까지 덮고
다시 그 위에 자켓에 달린 모자를 둘러쓴다.
오가면서 만나는 산꾼들이, 눈만 빼곡하게 보인다.
피차 비슷한 모습들이다.
중간중간 사진을 찍는 일이 쉽지않다.
겉장갑을 벗고 속장갑만 낀채 사진을 찍는 것도 혹한과의 싸움이다.
손가락 마디가 떨어져나가는 것 같다.
능선을 걸으면 작은 능선들이 마치 갈비뼈를 드러내듯이 선명하고
사이사이에는 하얀 눈이 산을 덮고있다.
저 멀리 어딘가가 지리산 주능선일텐데....
눈길은 때로는 광활하고, 때로는 혼자 길을 지나기도 힘들정도로 협소하고
혹은 몸을 낮춰야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곳도 있다.
하얀 눈으로 이어진 길에서 문득 만난
겨울 산죽(山竹)의 푸른 잎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동엽령(冬葉嶺)이라는 이름을 생각해낸 사람의 감각이 놀랍다.
동엽령에서 향적봉에 이르는 길 중간쯤 왔을 때,
홀로 지나는 여자를 마주쳤는데, 안성까지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본다.
대략 2Km 더하기 4.5Km 라고 이야기해주니,
눈에는 절망하는 빛이 역력하다.
그가 가야할 길이 내가 걸어온 길이다.
눈길에서 오르막은, 한 걸음 오르면 반 걸음을 뒤로 내려보낸다.
끊임없이 그런 소모전을 이어가면서 오르는데
체력이 떨어질수록 뒤로 밀리는 거리는 늘어간다.
그러면 또 그에 비례해서 더 지쳐가고....
오가는 좁은 길에서는 누군가 한 쪽에서 기다려줘야한다.
급한 경사길에서 기다리다보면 내려오는 산꾼들이 엎어지면서 미끄러져내려온다.
피하려고 한 발을 뒤쪽으로 옮기다보면
어느틈엔가 무릎높이까지 눈속으로 빠진다.
향적봉에 이르기 전 중봉에 오르는 길이 힘들다.
바람은 쉬임없이, 거칠게 몰아치는데,
이게 칼바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수밖에 없다.
구름안개로 정상이 보이지않는다.
갈림길은 나무로 울타리를 하여 길을 가르키는데 그 모습이 때로는 정겹다.
중봉에서 다시 1Km를 걸어야한다.
중봉에서 향적봉까지 가는 길은 주목들의 군락지를 지난다.
길이 아담하고 아름답다.
사진을 여러장 찍었다.
얼마 지나지않았는데 추위때문에 배터리가 떨어졌다.
그 추위 속에서 디카 배터리를 교환하고 다시 사진을 찍었다.
오가는 산꾼들이 이 길에서 많이 머문다.
손이 에이는 추위 속에서 사진을 찍었다.
정상에 이르기 전,
향적봉 대피소는 하얀 눈을 가득 뒤집어쓰고있다.
여기서부터는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다.
삼각대를 펴놓고 구도를 잡는 사람도 있다.
덕유산 향적봉 정상,
1,614미터의 정상석 앞에 스틱을 놓고 사진을 찍었다.
정상 주위는 바람이 칼바람이다.
능선에서 부는 바람과는 또 다르다.
사방 어느 곳에도 의지할 곳 없는 최정상.
사람들이 붐빈다.
대부분 무주리조트에서 근처 설천봉까지 오르는 곤돌라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이다.
향적봉에서 설천봉으로 이르는 아기자기한 길을 내려오니,
성제루 건물이 보인다.
여기부터는 관광지다.
무주리조트 스키장의 곤돌라가 오르고,
스노보드를 타는 사람들과 아이젠에 스패츠를 착용한 산꾼들이
뒤범벅되어있다.
친구 관악은 향적봉에서 백련사을 지나
무주구천동 계곡 7Km를 더 걸어서 내려가고있을 것이다.
나는 무릎에 부담을 주었던 지난 가을의 후유증때문에
겨울에는 남한산성과 청계산 산행 외에는 조심하면서 지냈다.
향적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편하게 내려가는 방법을 택했다
곤돌라를 타고 리조트에 내려오니,
세상은 또 다른 모습으로 활기에 넘쳐났다.
무주리조트는 지금 한창 제철을 만났다.
젊은 스키어들의 화려한 복장이 들뜬 분위기다.
리조트 셔틀버스를 타고,
구천동 종점에 가서, 관악을 다시 만났다.
4시40분, 삼공리탐방지원센터 부근은 적막했다.
여름의 지리산 천왕봉,
가을의 설악산 서북능선,
그리고 이제 겨울의 덕유산 향적봉에 올라보았으니
이제서야 비로서 산행의 입문을 겨우 마쳤다 할 수 있겠다.
*조블 2011/01/09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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