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한동안 산악훈련하는 마음으로 산에 다녔다.
스스로 좋아하지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영향을 준 것은 아무래도 친구인
진정한 산꾼, <산초>와 <관악>때문이라고 해야겠다.
두어달 동안,
근처 대모산에 7-8번 정도, 청계산에 3-4번, 그리고 검단산에 다녔다.
산행은 여러번 해도, 할때마다 매번 힘들었다.
그러나 조금씩 익숙해지고있는데,
마침 지난번 낚시다녀와서 <관악>이 설악산 <서북능선>을 제안했다.
나는 동행하고싶었지만, 관악에게 폐가 될까 걱정이었다.
지난 주말의 일화다.
내가 후배들과 청계산, 청계골에서 마악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관악이 연락을 했다.
관악이 나와 통화후,
짐꾸리고, 과천에서 버스를 타고 양재 화물터미널로 와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매봉에 올라 약 20분쯤 지났을 때 관악이 매봉에 도착했다.
나와는 몇번 산행을 했지만, 다시 한번 그 속도에 놀랐다.
같이 원터골로 내려와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우리는 양재역으로 나오려는데,
관악은 원터골에서 다시 청계산을 올라 과천의 집으로 넘어갔으니,
속도뿐 아니라 지구력은 그야말로 진정 프로산꾼이라 할만하다.
2.
10월 19일,
관악과 함께, 산악회 버스를 타고 설악산으로 향했다.
한계령 -> 삼거리 -> 귀때기청봉(1,577미터) -> 대승령 -> 장수대,
총 13km, 7시간 예정의 종주일정이다.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자면,
나는 거의 초죽음이 되어 간신히 산행을 마쳤다.
종주 중간쯤부터 오른쪽 무릎에 이상이 생겨, 다리를 굽힐때마다 시큰거리고,
제대로 무릎을 구부릴수도 발을 땅에 디딜수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질질 끌면서 걸었고,
캄캄한 밤에야 겨우 부상당한 패잔병의 꼴로 장수대에 내려왔다.
산을 날아다니듯이 다니는 관악은 나때문에 한밤중에 같이 내려올 수 밖에.
폐가 될까봐 우려하였지만, 우려하던 정도를 넘어
그야말로 가장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
10:20분 한계령 출발, 저녁 6:30분 장수대 도착.
총소요시간 8시간 10분.
중간 식사시간 15분, 그리고 1분 미만의 휴식 5회정도 포함.
정말 제대로 한번 쉬지도 못하고 걸었다.
<서북능선>이 설악산에서 <공룡능선> 다음으로 어려운 코스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3.
한계령은 해발 920미터이니,
귀때기청봉 1,577미터는 출발부터 많이 짤라먹고 올라간다.
1차 목표지점인 삼거리까지는 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힘들어도 그냥저냥 올라가는데,
본격종주가 시작되는 삼거리에서 귀때기청봉까지는
중간에 너덜바위 지대를 지나야하는데, 체력소모가 엄청나다.
너덜바위에서의 높낮이도 문제지만
작은 봉우리, 봉우리 사이마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길이
모두 험하여 금방 지친다.
날이 흐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산행길이 힘들어도, 설악의 전망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하고 시원하여
여태까지 어디에서도 맛보지못했을 정도로 청량했고, 가슴속까지 시원했다.
관악이 설악에 바람맞으러 가자던게 이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온다.
힘든 산행중에도, <설악의 바람>을 맞으러 다시오고싶은 마음이었다.
능선에서 바라보는 공룡능선의 자태와
도처에 칼처럼 솟아오른 바위산들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설악산 단풍은 다음주가 절정이라는데,
산 정상은 이미 잎들이 다 떨어져, 나무는 벌써 앙상하게 겨울을 맞이하려한다.
다음주 단풍의 절정은 아마도 산아래 행락객을 위한 일정일 것이다.
너덜바위는 거의 한시간 반 정도에 걸쳐있었고,
귀때기청봉쯤에서 나는 상당히 지쳐있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그 직후 또다시 너덜바위를 지나는 과정에서
갑자기 오른족 무릎에 통증이 오며,
한순간 무릎이 접힐 때마다 시큰거리더니 다시는 풀리지않는다.
후미 대장이 가지고있는 스프레이 진통제를 뿌리고
관악이 가지고온 파스를 부쳤는데도 잠시 괜찮았을뿐 계속 고통스럽다.
아무래도 산에서 밤을 맞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한편 헤드랜턴을 준비한것이 다행이다는 생각이 스친다.
4.
대승령 1.8km를 남겨놓고 걷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이 막막했다.
언제 대승령이 나오나 하며 앞에 있는 봉우리를 보니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인지 그 뒤에 있는 봉우리인지,
대승령이 그 다음 봉우리라면 거의 죽음인데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사이사이마다 작은 언덕을
올랐다 내려갔다, 다시 올랐다 내려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
이윽고 대승령에서 장수대로 하산하는 길목부터는 경사가 급한 내리막인데,
무릎통증은 내리막에서 거의 고문의 수준이다.
내려 밟아야하는 발이 무릎의 통증으로 선뜻 땅을 밟지 못한다.
스틱에 의지해 지루하고도 지루하게 걸음을 내딛는다.
장수대 2km 정도를 남겨놓고부터
단풍은 그야말로 절정이다.
맑고 빨간 단풍, 샛노란 단풍, 계곡과 어우러진 단풍이 절경을 이룬다.
이제 다음주면 산아래에서 단풍이 무르익을 것이다.
장수대 1.2km 정도를 남겨놓고는 드디어 헤드랜턴을 켰다.
사방은 어둠으로 새까맣다.
마지막 1km를 남겨놓고 비로서 멀리 아래 차도에 불빛이 보인다.
반가움으로 안도감이 와야겠지만,
아, 아직도 저리 까마득히 멀리 있다는 절망감이 먼저왔다.
달팽이처럼 느리고 지루한 하산길을 마치고
이윽고 마지막 후미그룹과 함께 장수대 주차장에 이르니 저녁 6시30분.
8시간 10분의 철저하게 무너졌던 행군은 간신히 끝났다.
이번 종주는 중간 이후부터는 퇴로가 없고,
탈출로는 애당초 없었던 종주였기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산악회 일행의 중간그룹보다는 아마도 1시간 정도의 늦은 도착이었고,
늦게까지 기다려준 일행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황태국에 밥말아먹고, 김치를 먹으니 살 것 같았다.
5.
다음날도 무릎을 구부릴 때마다 시큰거리는 통증은 계속되었다.
걱정이 되었다.
문제가 생긴다는 그 자체보다는,
이제 마악 좋아지기시작하는 산에 다닐 수 없게될까봐 그게 걱정이었다.
집사람은 뜨거운 목욕을 하고 달래보라했지만,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할 것 같다.
아침에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다한다.
의사의 이야기로는 초기관절염이 그런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며칠 물리치료받고 약을 먹으면 괜찮을거라 한다.
그러나,
외부에서 점심약속한 음식점이 3층이었는데, 식사후,
일부러 계단을 걸어내려와봤는데, 차도가 없고 통증이 계속 심각했다.
그런데, 저녁에 친구를 만나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데
거짓말처럼 아픈 증상이 사라졌다.
이번 산행의 교훈은 컸다.
항상 겸손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안다는 것,
인생의 교훈이 결국 같은 것 아닐까.
산행 다음날, 관악이 걱정을 하면서 몇번이나 연락을 했다.
밤에 들어와 보니, 메일이 와 있다.
내 스스로 관리에 소흘하여 좋은 친구에게 걱정을 끼쳤으니 내 잘못이 크다.
*조블 2010/10/2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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