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대단원
월왕 구천(勾踐)이 노예생활에서 풀려나 귀국한후
마지막 전투에서 이기는 대단원에 이르기까지의 세월은 긴 세월이었다.
사연도 많았겠지만, 드라마에서는 빠르게 지나간다.
제후국의 맹주가 되려는 오왕 부차(夫差)는
제후들을 황지(黃池)에 모이라 하고,
이제는 제후국들의 맹주가 자신의 오나라임을 확인하려 한다.
부차(夫差)가 노(魯)나라와 제(齊)나라를 무찌른 후다.
오왕 부차(夫差)는 구천(勾踐)에게
군사를 데리고 출병하여 자신을 도우라고 명한다.
이에, 월왕 구천(勾踐)은 3만의 군사를 이끌고 황지(黃池)로 향하는데,
이는 회계산에서의 패배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의 이야기다.
그러나 사실, 이번의 출병은
월왕 구천(勾踐)이 그동안 인내했던 세월의 한을 씻기위하여 오나라를 치러 가는 것이다.
황지(黃池)로 가는 길은 오나라를 지나서 북진하여야하니,
누구나 구천(勾踐)의 군사를 오왕 부차(夫差)의 명령에 따라 황지(黃池)로 가는줄 안다.
< 출정하는 월왕 구천(勾踐)의 군사 >
이윽고 구천(勾踐)의 군사가 오나라의 고소성에 이른다.
고소성은 오나라의 태자 우가 지키고있다.
태자 우가 성문을 열지않으려하자,
계략으로 성문을 열게한 후, 일시에 안으로 쳐들어가
성을 함락하고 태자 우를 죽인다.
황지(黃池)에서 진(晋)과 회맹(會盟)의 주도권을 다투어 지리한 외교전을 펼치며
구천(勾踐)의 지원군이 이르기를 기다리던 부차(夫差)에게
구천(勾踐)이 오나라를 공격했다는 놀라운 사실이 전달된다.
교착상태를 속전속결로 끝내고 빨리 오나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부차(夫差)는 황지(黃池)에서 군사력을 과시하여 회담을 급하게 끝낸후,
허울만 좋은 맹주의 지위를 얻고서 급히 오나라로 철수하여 왕궁에 들어가나,
오궁은 곧 구천(勾踐)의 군사에 포위되는데,
오나라의 군사는 이미 월나라에 상당부분 타격을 입은 상태다.
< 오왕 부차(夫差) >
부차(夫差)는 성을 나가 넓은 곳에서 전투하여 결판을 내자며
군사를 10리밖으로 물러나도록 청하는 사자를 보내나,
월왕 구천(勾踐)은 이제 전쟁의 방법은 자신이 결정한다며
부차(夫差)의 요구를 거절하고, 왕궁을 둘러싼 포위를 풀지않는다.
대규모 전투도 없이 월나라군사는 포위만 하고있다.
대책없이 시간은 흘러가고,
월나라의 포위와 압박에 지친 오나라 성에서는 식량이 떨어져간다.
이윽고 부차(夫差)는 백비를 제후국들에 보내 지원군을 요청한다.
그러나 누구도 오나라의 요청에 응하지않고,
오궁에서 모두가 지칠때쯤 백비는 거지모양이 되어 돌아온다.
이윽고, 월나라의 포위에 갇힌지 거의 600일이 지났다.
이제 부차(夫差)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안다.
< 오나라의 백비 >
오왕 부차(夫差)는 백비에게 구천(勾踐)을 찾아가 강화를 하도록 지시하는데,
자신이 월왕 구천(勾踐) 에게 가했던 것과 동일한 조건으로 신하국이 될 것을 청하나,
월왕 구천(勾踐)은 오나라를 절대 살려두지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백비는 이제 어떠한 경우에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죽은 백비의 수급을 마주한 부차(夫差)는 자신의 최후를 생각하며
서시(西施)에게 마지막으로 춤을 추라 하고 생각에 잠긴다.
부차(夫差)는 죽음을 생각하지만, 그러나
자신의 죽음으로 스스로 오나라를 망하게 할 수 없으니,
결국은 구천(勾踐)에게 투항하여 무릎을 꿇고 오나라의 존속을 부탁한다.
그러나 월왕 구천(勾踐)은 거절한다.
다만, 부차(夫差)를 오지인 용동(甬東)에서 여생을 보내도록 허용한다.
궁에 돌아온 부차(夫差)는 자결함으로써 허망한 생을 마친다.
승리하고 월나라로 개선해 돌아온 구천(勾踐)은
왕비 아어가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오나라에서의 치욕을 견디면서도 승리를 기다려 그 긴세월을 살아온 월의 왕비는
이제 승리를 확인한 순간 자신의 목숨을 끊은 것이다.
< 월나라의 왕비 아어 >
오나라를 멸하고 월왕 구천(勾踐)이 월나라로 돌아온 것은,
그가 노예로 끌려간 때로부터 무려 20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의 일이다.
이제는 늙어버린 구천(勾踐),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지내던 마굿간에서 지나간 세월을 생각한다.
모든 것이 끝난 후,
범려(范蠡)는 문종(文種)에게 월나라를 떠나자 권하지만,
문종(文種)은 남는다.
범려(范蠡)는 서시(西施)와 함께 작은 배를 타고
멀리 호수 위를 사라져간다.
드라마에서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8. 드라마와 역사의 진실
드라마의 사극은, 대체의 줄거리를 역사의 기록에 따르지만,
재미를 위하여 상당부분 가공의 이야기로 극을 이끌어 나간다.
동주 열국지(東周 列國志)는 소설적 재미와 정사(正史)류의 역사서를 겸하고 있는데,
소설의 형식을 지니고 있긴 하나 완전한 픽션이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춘추전국 시대의 중요 문헌들을 참고하여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해 각색한 책이다.
열국지(列國志)에는,
월나라의 왕녀 계완이 오나라를 도망치는 이야기는 없다.
또한 오왕 부차(夫差)가 월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부차(夫差)가 선왕인 합려(闔閭)의 3년상을 마친후 복수하기 위하여 군대를 일으킨 것이지,
월왕 구천(勾踐)이 기습으로 선제공격했다는 이야기도 없다.
원래 백비는 초나라 사람으로 오자서(伍子胥)가 천거하였는데,
결국 오자서(伍子胥)는 백비의 모함에 빠져 죽게된다.
드라마에서 구천(勾踐)은,
오궁에 잡혀와서도 결사적으로 부차에게 대적하려하지만,
열국지(列國志)의 기록에는,
구천(勾踐)은 오궁에 도착하면서, 상반신을 발가벗고 무릎으로 기어 들어가
...동해의 천신 구천(勾踐)은 제 힘도 모르고 큰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죽이지않고 빗자루를 잡게 해주시니
그저 황공하옵기 그지없습니다...
라고 처음부터 스스로를 굽히고 목숨을 구하려 한다.
구천(勾踐)은 죽은 오왕 합려(闔閭)의 무덤곁 석실에 살면서,
때묻은 옷을 입고 낮이면 말을 기르고,
오왕 부차(夫差)가 수레를 타고 행차할 때면 말고삐를 잡고 걸었다.
오나라 백성들이 그를 보며,
저것이 월왕이란다, 하며 비웃었다.
오왕 부차(夫差)의 변을 맛보며 완쾌되는 날을 맞춘 것도
범려(范蠡)가 방법을 구천(勾踐)에게 알려줬다고 기록은 전한다.
구천(勾踐)은 울면서 한탄하지만,
오자서(伍子胥)의 말을 듣고 사이사이 맘이 변하는 오왕 부차(夫差)의 동정을 받으려면
비상한 방법을 써야한다고, 범려(范蠡)가 설득한다.
드라마에서는 범려(范蠡)가 서시(西施)를 구한 것으로 이야기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월나라에서 전국에 미인을 구하기위하여 2천명을 선발하고,
그중에서 서시(西施)와 정단(鄭旦)을 뽑아,
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온갖 기술과 재주를 교육시켜서 오왕 부차(夫差)에게 보낸다.
또한 기록에 의하면,
오왕 부차(夫差)가 제후들을 황지(黃池)에 모아 맹주자리를 다툴때,
월왕 구천(勾踐)구천이 오나라를 쳐들어가 승리하는데,
이때 백비가 화평을 위한 사자가 되어 구천(勾踐)을 찾아
오나라가 앞으로 복종하겠다 약속하고,
구천(勾踐)이 오나라의 항복을 받아들인다.
< 월왕 구천(勾踐) >
오나라가 패망하는 것은 그로부터 9년후
구천(勾踐)이 다시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로 쳐들어갔을 때이다.
오왕 부차(夫差)가 세차례의 전투를 모두 패하고 오성으로 패퇴하는데,
이때 백비는 병들었다 핑계대고 나오지않았다.
이때 오나라의 신하 왕손락이 오왕 부차(夫差)를 대신해서
웃옷을 벗고 성밖으로 기어나가 월왕 구천(勾踐)에게 화평을 청하는데,
구천(勾踐)이 이를 불쌍이 여겨 화평을 허락하려 하지만,
범려(范蠡)가 이를 반대한다.
오나라 사자는 7번이나 구천(勾踐)을 찾아와 교섭하지만 무위로 끝난다.
다시 전투는 시작되고,
오왕 부차(夫差)는 겨우 몇명의 수하를 데리고 남양산으로 도망친다.
월나라 군사 천 명이 부차(夫差)가 숨어있는 근방 일대를 겹겹으로 포위한다.
오왕 부차(夫差)는 글을 써서 월나라 군사가 있는 쪽으로 활로 쏘아보내는데,
...토끼를 잡고나면 다음은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했으니 [토사구팽(兎死狗烹)],
이제 오나라가 망하면 그 다음은 범려(范蠡), 문종(文種) 두 대부가 죽을 차례요.
그러니 두 대부께서 우리 오나라에 약간의 은혜를 베풀어주오...
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문종(文種)이 이에 부차(夫差)의 죄를 묻는 글을 부차(夫差)에게 보낸다.
오왕의 신하 한 명이 속국이 되기를 청하려하나,
문종(文種)과 범려(范蠡)가 만나주지를 않자, 사신이 울면서 돌아간다.
구천(勾踐)이 이를 가엾게여겨 부하장수에게 명하기를,
지난 날의 정리를 생각하여
부차(夫差)가 오지인 용동(甬東)에 가서 500집만 거느리고 살도록 한다.
그러나 결국 부차(夫差)는 자결하여 생을 마감한다.
오성에 입성하니 오나라의 문무백관이 구천(勾踐)을 맞이하는데,
백비가 그 무리에 함께 서있다.
이에 구천(勾踐)이, 주군에게 불충하고 뇌물을 받은 죄를 물어,
그자리에서 죽이라 명하여 백비는 죽는다.
역사에서의 기록은 이와 같다.
9. 역사가 전하는 그후의 이야기
열국지(列國志)는,
그 후의 이야기를 이렇게 전한다.
오나라가 망한 후, 범려(范蠡)는 구천(勾踐)을 떠난다.
범려(范蠡)가 떠난 후, 어떤 사람이 문종(文種)에게 서신을 전하는데,
범려(范蠡)의 친필이다.
...그대는 지난 날 오왕 부차(夫差)가 한 말을 기억하는가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이야기를 [토사구팽(兎死狗烹)]....
이제야 말하지만, 월왕의 상호를 보건대 그는 목이 길어서 욕심이 많고 질투심이 강하오.
특히 참는 힘만은 대단한 사람이오.
그러므로 고생은 함께 해도, 함께 부귀를 누릴 인물은 못되오.
그대가 지금 벼슬을 버리고떠나지 않는다면 반드시 불행을 면치 못하리라...
< 범려(范蠡) >
서시(西施)에 대한 이야기는 이러하다.
월왕 구천(勾踐)이 승리한 후 서시(西施)를 월나라에 데리고 왔는데,
월의 왕비가 심복부하를 시켜 서시(西施)를 납치해서 죽이게 하고,
...나라를 망치는 요물을 죽였으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라며 안심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시(西施)가 범려(范蠡)와 함께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기도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서시(西施)의 죽음을 안타까와하는 백성들 사이에,
민담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이다.
범려(范蠡)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기록에 남아있다.
월나라를 떠난 범려(范蠡)는 제(濟)나라에 가서 살면서,
나중에 사람을 보내 아내와 아들을 데려갔다.
제(濟)나라에서는 그의 재주를 탐내어 그를 재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범려(范蠡)는 후에 이름을 바꾸고 전혀 새로운 삶을 사는데,
도산(陶山)에 들어가 목축을 하고, 장사를 하여 엄청난 부를 일군다.
범려(范蠡)는 스스로를 도주공(陶朱公)이라 자칭했는데,
후에 사람들은 부자되는 법을 기록한 책을 말할 때
도주공(陶朱公)이 남긴 술법이라고도 한다, 라고 열국지(列國志)는 말한다.
다시, 문종(文種)의 이야기다.
구천(勾踐)은 문종(文種)의 재주와 능력을 잘 아는지라,
혹 그가 모반하지않을까 항상 걱정을 한다.
심지어 출전을 해야하는데도, 문종(文種)이 모반을 할까 걱정되어 나라를 비우지못한다.
문종(文種)도 점차 분위기를 알게되니,
때때로 범려(范蠡)가 남겨준 편지가 생각난다.
이리하여 문종(文種)도 병을 핑계하고 궁에 나가지 않는다.
< 문종(文種) >
어느날 구천(勾踐)이 문종(文種)을 찾아와 문병하고 돌아가면서
검을 놓고 가는데, 그 검이 촉루검이다.
오왕 부차(夫差)가 오자서(伍子胥)에게 내려 자결하게했던 검이다.
문종(文種)이 뒤늦게 후회하며 자결한다.
월왕 구천(勾踐)은 부차(夫差)가 목숨을 끊은지 8년후 세상을 떠난다.
생각나는 이야기들이 있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이야기는 사실 한(漢)의 유방(劉邦)이 천하를 통일할 때,
천하를 호령하던 장군 한신(韓信)의 이야기로 더 알려져있다.
초한지(楚漢志)는 10권이지만, 8권부터의 이야기가 오히려 더 흥미롭다.
거기에는 유방(劉邦)이 어떻게 한신(韓信)의 군권과 지위를 뺏어 무력화하고,
한신(韓信)이 유방(劉邦)의 부인 여태후에게 어떻게 잡혀 죽임을 당하는가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가 죽임을 당하며 하는 말이 바로, 토사구팽(兎死狗烹)이다.
오왕 부차(夫差)에게 탁월한 책사 오자서(伍子胥)가 있었으나,
부차(夫差)가 그의 말을 듣지않으니 모든 것이 헛일이 된다.
마치 초(楚)의 항우(項羽)에게 범증(范增)이 있어
유방(劉邦)을 죽이도록 수도 없이 계책을 쓰고 권하지만,
대범한 항우(項羽)가 이를 듣지않는 것과 흡사하다.
결국 항우(項羽)는 유방(劉邦)과 100번의 싸움에서 99번을 이기고
마지막 한 번의 싸움에서 패하여 천하를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범려(范蠡)는 떠나고, 문종(文種)은 남았다가 목숨을 잃는다.
유방(劉邦)의 책사 장량(張良)도, 범려(范蠡)와 마찬가지로
천하를 얻은 뒤 홀연히 떠나는데,
그후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남기고 역사에서 사라진다.
역사의 이야기에는 항상 배신의 기록이 있다.
10. 드라마 이야기
드라마 <와신상담>에 대한 간단한 정리다.
연출 호우영(侯詠)
< 구천역 진도명(陳道明) > 중국 최고의 국민배우.
영화 <무간도3>에 출연했으며, 장예모 감독의 <영웅>에서 진시황으로 나온다.
< 부차역 호군(胡軍) >
영화 <무간도2>에서 육 국장으로 나오며, <적벽대전>에서는 조자룡으로 나온다.
아어역 좌소청(左小青)
범려역 가일평(賈一平)
서시역 안이헌(安以軒)
< 왼쪽부터 가일평(범려), 진도명(구천), 호군(부차) >
< 가일평(범려), 좌소청(아어), 진도명(구천) >
구천역 진도명(陳道明)의 연기는 최고의 연기라는 평이다.
드라마는 연극무대와 같은 집중도와 대사, 조금은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41편의 긴 드라마를 계속 긴장하면서 몰입하게 만든다.
드라마를 직접 감상해보시기를 권한다.
*조블 2010/03/2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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