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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天命을 지나 耳順의 나이에도 모르는 일들

일상

by 아이현 2016. 1. 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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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구 YO의 편지

Monday, June 01, 2009 4:07 AM
Subject: 知天命을 지나 耳順의 나이에도 모르는 일들... 
 
친구들,
 
그간 안녕들 하신가?
 
온두라스는 40도를 넘나드는 한낮의 열기와 습기로 정말 덥더군. 
닫지도 열지도 못하는 공장 문을 열어 놓고, 하나 둘 문 닫고 떠나는 봉제공장 사람들과
작별 인사하고, 속으로는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격이지...' 하면서도
아직  공장문을 닫지도 못하고 L.A.로 돌아 왔더니,
그 날 밤에 강도 7.1의 지진이 닥쳐서 공장의 기계들이 틀어지고,
물탱크는 넘어져서 파손되어, 다시 모두 재 정비를 해야 한단다.
내가 돌아 온 것이 지진을 피해 잘 한 것인지, 아니면 지진의 피해 복구를 해야 하는데
시간을 잘 못 선택한 것인지, 집사람과 나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모처럼 돌아와 한국방송을 켜니, 노무현씨의 자살로 인한 국민장 소식으로
모든 방송, 신문, 포털 싸이트까지 도배를 했더군.
개인적으로는 참 안되었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낮설고,
무언가 잘못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 
 
5,6백만명의 추모객은 도대체 내가 알고 있는 한국민들이 맞는지,
모든 방송에서는 노무현씨의 생전 모습을 방영하며,
민주투사, 우리 서민의 곁을 함께한 대통령 등등 미화하며
그를 억울하게 죽은 민주투사로 묘사하길 주저치 않고 있더군요.
민주당은 정부를 향해 노무현씨의 죽음에 책임지고, 노무현씨의 부정을 조사했던 검찰과
그외 관련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하고, 여러 사회단체들은 거리를 점령하고 불벖시위와
경찰에 대해 폭행을 자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정말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노무현씨는 집 뒷산 부엉이 바위인가 하는 곳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자살했다고 들었는데, 그를 죽음으로 몰아 간 사람을 처벌하라니 의아해 질 수 밖에 없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바로 불법으로 뇌물을 받은 그와 그의 부인이고,
불법 투자를 받은 그의 아들이고, 불법 이권으로 치부하며 불법 인사개입을 한 형이고,
또 그의 주위에서 이권을 바라고 뇌물을 바치던 그의 친구들이고 호가호위하면서
이들을 받아 챙긴 그의 사람들이었지 않았나?
보통사람들이면 챙피해서 말도 못 할 터인데, 이들은 죽음으로 몰아 간 사람들이
이들의 불법 행위를 조사하는 검찰이나 현 정권 사람들이라고 몰아 세우고
' 정의의 심판을 받아라' 하고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꼴을 하고 있다.
 
더욱 우스운 것은 현 정권과 검찰이다.
노무현씨가 자살했다고는 하지만, 
그가 인정했듯이 그의 부인이 청와대에서 뇌물을 받았고, 아들이 불법으로 투자를 유도했으니
검찰은 법에 따라서 그들이 좋아하는대로 ' 성역없이' 수사를 계속해서 밝힐 것은 밝혀야 할 것인데
노무현씨가 죽었다고 모두 수사를 중단한다니... 이런 개같은 경우가 있나.
노무현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이곳 저곳 눈치를 볼때 부터 알아 보긴했지만,
현재 검찰은 너무 정치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검찰이 살려면, 이곳 저곳 눈치 보지 말고 그야 말로 성역없이 수사하는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현 정권은 또 뭔가? 아무리 노사모등 추종자들이 무섭다고는 하지만,
한나라의 공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불법 집회를 하는 사람들에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수천명에 달하는 장의 위원을 설정하고 한 나라가 몇 주일씩 떠들석하게 놔두어야 한단 말인가?
 
제일 이해 못하겠는 것은 한국민들이다.
정말 노무현씨가 자살한 것이 그렇게 침통하고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몇백만이나 된단 말인가?
그 사람들 다 뭐하고 노 전대통령의 말년에 10%대의 지지율이 시달렸단 말인가?
정말 몇시간씩 더위에 시달리면 기다리다 헌화 하고픈 사람들이
온 나라에 몇 백만이 되도록 많았단 말인가?
이 사람들이 노무현이 정치 잘 못한다고, 온 나라를 싸움판으로 만든다고 걱정했던 사람들이 맞는가?
노무현이는 깨끗한 정치, 불법과 특권이 없는 정치를 한다고 하면서 뒤로는 뇌물 받던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 위선자라고 외치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 갔는가?
 
좌 편향 정권이 10년을 맡았으니, 나라가 얼마만큼 좌로 이동했음을 모르지는 않는다.
국민들이 좌 편향 정권의 실정을 알고, 나라를 제 위치에 놓아야 한다고
보수적, 경제 중심의 정권을 뽑았으면, 현 정권은 그동안 좌로 이동했던 나라를 제자리로
돌려 놓는데, 남의 눈치를 봐서는 않될 것이다.
 
나라를 약간은 우로 돌려 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뽑아 준 정권이다.
나라는 좌도 있고 우도 있어야 견제와 균형, 진보가 있기 마련이다.
현재 이명박 정권은 좀 더 소신있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 같다.
그를 뽑아 준 진보진영이 얼마나 실망하고 있나?
제발, 나라의 질서를 잡아 주길 바란다.
맨날 경찰들이 데모대에 밀리고 터지는 소식이나 듣는 내외 국민들이
얼마나 짜증스러운지 알기나 알까?
 
나라 곳곳에 좌 편향 사람들이 지난 10년가 많이 박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사법파동을 보면서 사법기관에 그들이 얼마나 많은가 짐작이 가고,
이번 국민장을 방영하면서 방송계에도 많은 그 쪽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평가고사를 보지 말자고 애들 데리고 놀러가는 선생님들이 있다는 것을 보니 그쪽도 많을테고...
제발, 군에만으 그사람들에 의해 좌지 우지 되지 말아야 할텐데,
그것도 단순히 바램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나라를 전쟁후 파괴와 빈곤으로 부터 구출해서 그래도 먹고 살 만한 세상을
넘겨 주었던 우리 세대 사람들이 이제 그들에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할 때가 온것이 아닐까?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 이순의 나이가 지척인데,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 고국에서는
벌어지고 있다. 내가 외국에 너무 오래 살았나? 아니면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 있는 걸까?
 
답답한 YO 이가. 
 
 
 
2. 친구 JH의 편지
Sunday, May 31, 2009, 7:28 PM
 
딴나라에 있는 친구 YO 에게  
전에는 자네가 보내준 이메일을 열면 프로그램이 맞지 않아서 글씨가 깨져서
다른 친구들의 답신을 통해서 내용을 알게 되곤 하였다.
 
프로그램을 수정하려고 노력해도 잘 않되었던 것인데 이번에는 글씨들이 깨지지 않고
뚜렷하게 읽을 수 있어 반가운 마음에 변변하지 못한 답신을 보낸다.
 
스승의 날이 있는 5월 마지막 주말인 30일에는 대학 친구와 은사님들과
유성에서 골프를 치고 (올해들어서 처음 친것임) 저녁을 즐겼고 
5월 31일 일요일인 어제는 계룡산을 등반하였는데
그동안 서너차례는 약 2시간 거리인 남매탑까지를 3-4시간에 걸쳐 다녀오곤 하엿는데
어제는 남매탑을 걸쳐 관음봉을 지나 은선폭포로 코스를 잡고 등산을 하였네
 
2달넘게 입원 치료를 받았고 당시에는 그렇게 심각한지를 느끼지 못했으나
퇴원 후 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당시가 상당히 중환이었던 시기인 것을 알게 되었고
치료를 담당했던 두 교수들도 그당시에는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자기들도 매일 긴장하면서
연말을 보냈다고 실토를 하더군....
 
그러한 경우를 지나고 이제는 건강 관리를 열심히해서 거의 정상적 또는
전에보다 더욱 좋아진 몸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요.
어제는 전주에도 갔었던 계룡산이지만 전과는 달리 장거리 등산을 하고자
계룡산에 갔었는데 날씨도 푸르고 그렇게 덥지도 않은 상태에서 산바람이 불때는
시원함 보다 약간은 쌀쌀하게 느켜질 정도로 상쾌했다.
 
해발 800미터가 넘는 고지인 산에서는 나비도 날고 벌들도 부지런히 날개 짓하고
여기저기서 새들의 웃음 소리도 들리고 땅에서는 개미들이 부지런히 어딘가를 향해서 가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을 보고 있느라니까 문득 자연속의 인간 또는 인간 중심의 자연 ...
어느 것이든 인간 나아가서는 나 자신과 자연과 또는 사회라는 굴레와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뇌리에 떠올랐네
 
역사와 현실을 통해서 자연과 인간은 상황에 따라 긴 시간동안 끊임 없이 적응하면서 지내 왔는데  
인간은 환경을 피해서 적응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거나 환경을 어느정도 변화시키면서 지내 왔는데
우리는 그것을 문명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 특히 나무는 이동도 못하면서 주어진 자리에서 무수하게 변화하는 기후와
환경에 적응하면서 어느 나무는 수백년 또는 수쳔년 지내온 것에 대해서는
숙연함과 경건한 마음이 들곤 하였단다.
 
전에도 가끔은 생각했던 주제이기도 하지만 어제는 그 느낌이 색다르고 강력했던 것 갔네.
나아가서는 꽃을 피우고 씨를 만들어 제2, 3의 자신을 번식 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나무도 자손 번식에 대한 본능이 있을까?  
어디서 어떨게 이러한 본능이 시작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들었네,
나무뿐 아니라 새, 개미, 나비 들도 마찬가지네
미처 우리가 모르는 그들만의 새로운 세계 또는 언어와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네. 
렇다면 우리는 무었일가 ?????????  
 
그런저런 생각 끝에 현실은 모든 생각을 멈추고 산 위를 향해서,
관음봉을 향해서 움직이느라 망상은 사라지고 땀을 흘리면서 이몸의 발거름을 한걸음 두 걸음 움직여
무사하게 등산을 완주한 결과 오늘 아침에는 거벼운 마음과 몸으로 한 주일을 시작하고 있네.
 
이제 내나이도 자네 처럼 이순이 되어서 몸과 마음이 반박자 늦어진 상태가 되어서 그런지
사물과 사건에 느껴지는 느낌이 그동안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측면에서 느껴지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했네 물론 이러한 감정이 순간일 수도 있지만
 
 
자네의 글 내용 전부가 어떻게 그렇게 내 생각과 전적으로 동감하는 지에 대해서
한편 놀라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반가웠네.
그러면서 역시 우리는 영원한 친구구나 하는 동질감을 가지고 이 글을 쓰게되었네.  
등대가 있는 육지에서는 등대가 별반 소용이 없으나
망망대해 바다에서 먼 항해를하고 육지를 향해 올때는 먼 거리에서 등대의 불빛을 보고
저 건너에 배가 닿을 수 있는 땅이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듯이
우리의 상황을 국외에서 바라보고 느끼는 자네의 견해가 더 뚜렷하고 객관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드네 
문론 한국에 대한 많은 관심이 있기 때문이지만.
 
요즈음 우리사회가 돌아가는 현상이 풍요속에 빈곤이랄까
다양한 생각들 속에서 유독 나만의 생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넌지시 운을 띄우면 별반 차이도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주변의 사회적 여건이 비슷해서 생각이 비슷하고
다른 여건에서는 그렇게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단다.
그러면서 우리가 나무의 생각, 새들의 사고, 나비의 본능들을 모르는 것과 같이
우리들 생각에도 서로 이해 할 수 없는 다른 무었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곤 하였네.
 
괜한 넉두리 인 것 같으네
 
자네 사업도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될 정도로 선망의 대상이 되었지만
어떻게 보면 참 오래동안 어려운 길을 가고 있다는 것과 온두라스 현지 여건도 위험했다는
소식들을 접하고 있는 것 같으네.
물론 개인 적으로 어려운 사정도 있고 아쉬움과 미련도 있을 수 있지만 
자네 말대로 세월은 흘러 자네 나이도 이제는 이순이네
거기에 다가 건강의 문제도 있고하니 가족들과 특히 부인과 깊은 상의를 해보도록 하는 것이
현명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물론 상의는 여러번 했겠지만
자기 아집과 주장을 무장해제하고서 의논해야지 어떠한 조건하에서 의논하면
그 것이 참다운 의논이 될 수 있을까?
 
아까 내가 말한 것처럼 자기 중심적이고 편의적인 생각보다는
나무, 벌, 새, 나비 등의 세계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항해사가 등대의 의미를 이해하듯이
자네의 사업을 순리대로 이해하고 처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하고 감히 말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계속 자기 주장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문장을 마치는 쉼표가 있듯이, 
쉼표를 찍은 후에 계속 글의 내용을 이어갈 수 있듯이 쉼표가 마침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 하듯이
쉰 다음에 문장은 계속되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이러쿵 저러쿵 간에 이제 얼굴 한번 볼때가 되었는데
우리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쯤인지 알려줄 수 있으면 좋겠네
물론 한국에서 있는 친구들도 서로의 연락이 왕성하지는 않고 있지만
 
넉두리가 길어진 것 같으네
건강관리 잘하고 가정의 행복이 영원히 깃들기를 바라면서 이만 줄이겠네
 
안녕
 
대전에서 JH 가
 
 
 
3. 친구 YO의 답신
2009년 6월 02일 화요일, 오전 03시 52분 24초
 
JH 에게,
 
자네에게 감동을 주는 기질이 있는 줄 40년 넘게 사귀면서 처음 알았네.
우선 자네가 이렇게 긴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 처음인 것 같고,
자신의 심정과 생각의 흐름을 아주 간략하고 선명하게 표현할 재주가 있다는 것에 감동하네.
물론, 그 내용을 보고 자네의 최근 심경변화, 살아가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네.
 
누구나 한번쯤 심히 아프거나, 죽을 수도 있었던 과정을 겪으면
삶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경우가 많이 있지.
만약, 죽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 보기 때문이야.
11년전 내가 위암으로 위 절제 수술을 하기 전에 사실 영정 사진이 될지도 모르는 사진도 찍어 놓고,
가족 사진도 찍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등을 설명해 놓고, 처리를 어떻게 하라는 등의 유서(?)
비슷한 것을 써 놓게 수술을 받았던 적이 있지.
그후, 내 삶의 패러다임이 바꿔었다고 생각지 않지만, 사물을 보는 시각,
인생을 보는 생각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지.
캐톨릭에 귀의한 것도 그때 일꺼야.
 
그 후에도, 담낭 절제 수술, 신장결석으로 인한 2차의 수술, 어깨 퇘행성 관절등
늘 어딘가는 아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네.
그래,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는 걸 느꼈지.
살아 있지만, 50세 이전에 느꼈던 그런 활력이 없어진 거지.
 
건강에 유의 하시게.
남아 있는 생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남아 있는 생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역시 건강이 아니겠나.
이젠 버리고, 잊고 해야 할 것들은 과감히 버려야 하는 때가 온 것 같아.
 
다시 감동적인 편지를 조만간에 기대하네.
 
YO 이가.  
 
 
 
4. 아이현의 편지 
2000년 6월 02일 화요일, 오전 08시 33분 55초
 
YO, JH, 그리고 친구들에게,
오가는 편지가 최근의 내 답답한 마음에 크게 위로가 되었다.
 
얼마 전부터는, 이제서야 나도 세상을 조금은 알듯하다는 느낌으로,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생각을 한다.
 
얼마전 회사에서 <리더와의 만남, Meet the Leader>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때 여러 직원들이 내게,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 기뻤던 순간, 인생의 좌우명,
인생에 가장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등등의
보통은, 흔히 물어볼 수 있는 그런 질문들을 하였는데,
나는 솔직히 정확하게 이야기해줄 것이 없었다네.
 
물론, 보통은 사전에 직원들의 질문을 정리해서 보내주고,
미리 답을 준비하고 참석하는데,
나는 그런 사전 준비가 너무나 작위적이라 마음에 들지않아
질문지를 보내지말라고 이야기했었지.
그것은 내 있는 모습 그대로의 모습으로 평상시에 생각했던 바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진솔하지않을가 하는 마음때문이었다네.
 
여러가지를 이야기했지만, 그 자리에서 내가 답한 일관된 내용은,
인생이란 내가 사는 이 순간 순간이 가장 중요하고,
인간으로서 마음이 흘러가는대로 사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 아닌가,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사람사는 거 별 거 없다...뭐 이런 사고의 마음이 아니었던가
하는 것이었다네.
사람사는 거 별 거 없다는, 그러한 표현이 인생에 대한 무책임한 그런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인생살이, 먼길 돌고돌아 결국 우리가 알아낸 것은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다네.
어디에 있건, 우리에게 주어진 삶, 그 고귀한 가치를 느끼며 살고싶은 나날이다.
 
친구 모두, 건강하고 YO이 말대로 <생의 질>을 제대로 살아가기를 희망하면서....
 
아이현

 

 

 

5. 친구 GJ의 편지

2009년 6월 04일 목요일, 오전 00시 43분 18초 +0900

 

한 2-3년 전 난 처에게 "우리 연애 한번 하자"고 제안을 했다.

사는게 무엔지 깊은 생각할 겨를이 없던 세월을 보낸 후 끊임없이 밀려드는

그녀에 대한 안스러움과 안타까움 때문이었을께다.

지난 여름엔 그 동안 약 반평생을 살던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옮기는 결정을 내렸다.

미국에서의 삶이 곤하거나 너무 편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 다시 한번 변화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국을 떠날 때와 비슷한 생각이었겠지.
 
얼마전 워싱턴 지사에 근무하던 친구 이삿짐에 함께 보낸 음반들이 서울 세관에 도착했다.

정확하게 125 박스였으니 그것을 장사할 물건으로 의심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루 한장씩 매일 사면 30년이 걸리는 양이니까.

워싱턴 집에 두고 온 게 아마 50박스는 될터이니

처가 그런 나를 힘들어 하던 것도 이제야 수긍이 간다.

아직 머리 뉠 방하나 구하지 못한 처지에 너무 서들러 보낸 건 아닌지 모르겠으나

암튼 잘 가지고 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JM이가 날 주려구 아직 보관하고 있다는 한국노래 음반들은

아무래도 내가 집을 구한 후래야 청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5년을 지내고 나면 나에게도 소위 은퇴라는 말이 적용되는 때가 된다.

그 때가 되면 사람들이 모여 웃고 떠드는 조그마한 터를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랜다.

얘기도 나누구, 술도 한잔 함께 하구, 음악두 같이 듣구, 때로는 추억의 쪼가리들도

서로 맞추고 꽤매보기도 하면서... 그런 시간을 보내는 공간을 꾸미고 싶다.

 

산이나 바닷가를 다녀와 그 곳에 들리면 그 때 YO이랑 아이현이는 시라두 한 수 읊던가

아님 그 동안 써온 글 중 그날 그 시간에 어울리는 것을 찾아 다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JH는 이제 처음 그 마음을 글로 표현해 보여주기 시작했으니 좀 더 두고 봐야할 것 같구...

암든 너네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내가 직접 틀어줄 날이 한 폭의 그림으로 지나간다.

 

다들 건강해서 오래 오래 같이 웃자... 많이 웃자...

YO이도 YS이도 HC이도 US도... 다 같이... 다 같이...

참 아름다운 늦봄의 한 밤이다.
 
GJ이가




*조블 2009/06/05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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