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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산가는 길

일상

by 아이현 2016. 1. 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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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말

계절이 쫗은 가을이라 그런지 결혼식이 많다.

그러나 나로서는 불가피하게, 주말 일정을 잡는데 치명적으로 제약이 걸린다는 이야기.

지난 주말도 그랬다.  어딘가로 떠날 수 없다.

 

 

2. 골프

토요일, 골프연습장에 갔다. 

5-6개월만인가?  아니 어쩌면 1년만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연습장에 다니지않았다.  필드에 많이 나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제는 연습장에 가지 않을 수 없다.

 

1982년에 골프를 시작했으니,

구력 25년이면 싱글이 되어도 몇번이라도 되고 남았어야 하는데,

때때로 다른 길로 빠져 한동안 골프를 떠나 지내다 돌아오고,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다보니,

한때 잠시, 그나마 조금은 치던 시절의 기억도 이제는 아리아리하게 먼 옛날의 일이 되었다

 

처음 골프를 시작하고 2-3년 되던 때는,

아마도 태권도나 유도로 말하면 가장 출중한 2단쯤 되었을 때 일텐데,

그 시절 한창 때는 첫홀 버디, 둘째 홀도 버디, 처음부터 연속 버디를 치면서 나가니

캐디가 채를 꺼내 건네는 자세마저도 내앞에서는 경건할 때가 있었는데......

그 시절에는 동반자 전원의, 18홀 코스 처음부터 끝까지, 타수와 상황을 완벽하게 전부

복기하곤 하였다.

 

오랫동안 안 치다 갑자기 치러 나가도 90 전후는 유지하면서,

연습하고 가나 안하고 가나, 몇 달만에 나가나, 엄격한 셈으로도 90 보기는 친다고

변명 겸 큰소리 치고 다녔는데 - 정말 헛소리 칠 일은 아니었건만 -

최근 몇번 친 스코아는, 88, 92, 그러더니 지지난주는 오크힐스에서 그냥 99 로 추락했다.

멀리간은 당연히 없고, 30-40센티의 거리가 아니면 기브도 없는 게임이었지만,

이날의 스코아는, 내색은 하지않았지만, 나에게 충격이었다.

 

그래서, 안되겠다싶은 마음에 연습하러 갔다.

게다가 최근에 새 드라이버가 하나 생겼다.

그러고보니 최근 수년동안 드라이버를 몇개나 선물받았다.

몇년 전에는 후배가 맥텍 드라이버를 딱 한번 친거라며 내게 주었고,

이번에는 또다른 이로부터 야마하 인프레스460D를 선물로 받았다.

겸사겸사, 연습장에 다녀왔다.  그렇지만 몇번이나 다닐런지......

 

 

3. 대모산 가는 길

연습장에 다녀와 점심식사를 하고 집에 있으려니 노곤하다,

햇살이 좋다. 

금년 가을은 햇살 제대로 보기가 힘들었었다. 

아마 과일도 아직 맛이 제대로 들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날씨가 정말 오랜만에 보는, 제대로 된 가을 날씨다. 

집사람이 근처 대모산에라도 가자한다. 

간단하게 차리고 나선다.

양재천을 건너 두세 블록만 지나면 대모산이다.

 

대모산 가는 길에 은행나무가 늘어서 있는데, 아직 노랗게 되기 전이다.

비에 떨어진 은행열매가 길위에 산만하게 흩어져있다.

반은 열매가 터져있고 반은 미처 익지않은 것들이다.

집사람은 덜익은 은행중에서 터지지않은 것들을 줍는다.  나도 줍는다.

 

은행열매가 두손에 가득해지니, 배낭 바깥에 난 주머니에 담는다.

은행은 냄새가 고약하다.

길가 네거리에 중년 남자가 사과를 가득 실은 미니트럭 옆에 한가한 모습으로 서있다.

사과를 담은 봉지들이 길가에 주렁주렁 펼쳐져있다.

- 청송 꿀 사과 5000원.

이렇게 쓰여진 글이 사과들 틈에 세워져있다.

그 옆, 아파트 담장 그늘에서 할머니가 파, 감자, 나물 등을 넓게 펼쳐 진열하고 앉아

파를 다듬고 있다.

 

집사람이 은행을 담을 비닐 봉지를 하나 얻으려 사과 파는 아저씨에게 부탁한다.

남자는 무표정하게 봉지를 하나 내민다.

- 가는 길에 사과 살께요, 지금은 무거워서......

집사람이 미안하니 말한다.

그 남자는 그냥 무표정이다.

 

할머니가 남자에게 말한다.

- 콩나물이랑 해서 밥 먹자.

아들은 표정이 없다.  대답도 없다.

갑자기 그 무표정이 내 가슴에 꽂혀 마음 아프다.

 

 

4. 대모산

산에 오르는 길은 나무로 무성하다.

가을의 상쾌한 날씨가 오랜만이다.

대모산에도 사람들은 제법 많지만, 그래도 청계산만큼 붐비지않아 좋다.

더구나 나무가 더욱 무성하여 길이 온통 나무그늘로 시원하다.

바람이 상쾌하니 벤치에 누워 한 숨 자고 싶어진다.

 

대모산 해발 290 미터.

몇번 쉬기는 하였지만, 무리없이 올랐다.

날씨가 좋으니 정상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모습이 선명하다.

 

 

 

 

 

 

 

 

5. 사과

내려오는 길은 더욱 편안하고 경쾌하다.

 

산에서 내려와 차도를 건너며 내심 사과 장수가 가버렸을까 걱정을 했다.

그런데, 사과 파는 남자와 할머니가 그대로 있다.

- 사과 하나 더 달라고 그런 소리 하지마시오...

내가 집사람에게 괜한 소리를 한마디 했다, 그럴 사람도 아니지만.

 

괜히 집사람 걸음거리가 빨라지면서,

- 아저씨 사과 사러왔어요. 이걸로 주세요.

하며 만원짜리 봉지를 짚는데, 그 아저씨 표정이 반가움과 미소로

피어오르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 옆으로 또 다른 사람이 지나가다 한 봉지 집는다.

 

아저씨가 사과 한개를 더 집어 봉지에 넣어준다.

- 하나는 먹고 가자.

내 말에 집사람이 칼을 빌리려하니 그 아저씨가 사과 무더기에서 하나를 더 꺼내든다.

나와 집사람이 동시에 아니라고 손을 내젓는데, 그 아저씨는 어차피 조금 상한 거에요, 하면서

칼로 껍질을 석석 베어내더니 반으로 툭 쳐서는 집사람에게 내민다.

 

사과가, 트럭 위에 써놓은대로, 그야말로 꿀맛이다.

조금 떨어진데 길가 그늘아래 앉아 사과를 먹는데, 마침 지나가는 사람 몇이 사과를 더 산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해진다.

 

밤에 아이와 함께 사과를 먹는데, 아이가 맛이 최고라 한다.

그 맛있는 사과를 한동안은 더 사게 될 것 같다. 

 

 



*조블 2007/10/12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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