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화요일 오랜만에 조찬모임에 나갔다.
자본시장관련 향후 금융시장의 변화에 대한 강연이다.
나는 사실 조찬모임이라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아침 일찍 나다니는 것도 싫고 또 다른 이유도 있지만.
다만, 가끔 필요하면 나가는 정도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제 두번이나 신정아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는 철지난 이야기인데.
조찬 모임에서 같은 테이블에 함께 앉은 이가, 전 법무차관, 그리고 전 oo차관 하던 분들인데,
잠시 신정아 이야기를 한다. 얼핏 들려온다.
거짓으로 만들어진 허상에 따라 정체성이 모호해진...... 이런 이야기.
사실 이 사건이 한창 최고의 뉴스이던 때,
공교롭게도 나는 관련이 있는 여러명의 사람들을 연속적으로 만났다.
변양균 실장의 친척 동생, 그의 고등학교 동기, 그리고 그와 같은 대학 같은 과 동기,
심지어는 그의 행정고시 동기까지 만났다.
내가 무슨 기자도 아닌 데 일부러 추적해서 만난 것은 아니었고,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이야기 끝에 알고보니 그런 관계였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제 이 이야기가 다 잊혀져가고있는 시점인데, 꼭두새벽 아침에 이야기를 듣고
또 점심 때 다시 한번 이야기가 나왔다.
점심에 모임에 참석하였는데,
- 사실 이 모임은 무슨 이야기꺼리나 좋은 글이 있으면
가지고 나오는 전통을 마악 만들어가고있는 중이었고,
지난번 모임에서는 코카콜라 회장의 좋은 글이 등장했는데 -
이 날의 모임에서는 신정아의 메일이 나타났다.
나중에 듣기로는 인터넷에서도 떠돌았다고도 하지만, 잊혀진 옛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편지를 보았다. 문장은 진하면서도 미술에 대한 소양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는데,
화가 클림트 그리고 그의 작품들, 키스, 유디트1, 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절대 필요로 하는
글이다. 이 편지가 본인의 글이라는 설, 또는 누군가가 신정아의 이름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아마도 후자가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알 수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편지를 보며 생각해보니, 변 실장의 마지막 모습은,
- 그 키스씬으로 시작해서 클림트의 유디트1으로 끝나는 섹스말이죠,
로, 상징적으로 묘사하듯이,
그야말로 유디트 1 의 죽음 이야기로 끝나고 말았다는 소회를 금할 수 없다.
화가 클림트에 대하여 하나 첨가하자면,
집사람은 대학때 취미로 유화를 그리고 해외생활을 할 때는 중국인 화가로부터 동양화를 배울 정도로
그림을 좋아하였는데, 지난 겨울 큰 아이가 유럽을 다녀오면서 제 엄마에게 사다준 선물이,
바로 클림트의 그림으로 장식된 양산이었는데, 비인의 벨베데레 궁전에서 사온 것이다.
편지와 더불어, 인터넷에서 구한 몇가지 자료를 함께 올린다.
2005 년 12월 13일
그리운 나의 클림트,
전화하고 싶었어요.
낮부터요.
정오에는 우리 미술관에서 일하게 될 큐레이트랑 면담을 좀 하느라 바빴고 참 제가
얘기했던가요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복원미술을 전공한 젊은 친군데 실력이 만만찮아요.
전공이 아니라 이쪽에서 일하는게 글쎄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경험삼아 큐레이트일을
좀 해보겠다해서 임시로 채용하게 되었거든요.
아무래도 곧 성곡을 떠날것 같기도 해서 제 뒤를 맡아줄 사람도 필요한 시점이구요.
우리 미술관에서 소장중인 조선중기 작품 몇점이 상태가 시원찮아 보관중인게 몇점있는데
그 친구에게 한번 맡겨 봐야겠어요. 미술품 복원작업은 한두사람 손을 거치는게 아니라
그 친구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는 없지만 장비로 숨어 있는 손상부위도 찾아내야하고
복원 부위를 정해 아주 디테일한 작업이 들어가야 하거든요.
작업이 끝나면 대중앞에 선보이기전에 당신께 제일 먼저 보여 드리고 싶어요 .
당시의 풍속도이긴한데 선비차림의 양반신분으로 보기 드물게 젖가슴을 풀어 헤치고 있는
아낙의 젖가슴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그림이예요. 자세히 보면 선비도 바지를 허리춤까지
내려 있는걸 볼수 있어요. 풍속화라 하기에도 그렇고 그렇다고 춘화는 절대 아니죠.
예나 지금이나 다들 체면 차리고 살지만 가능하다면 아낙의 젖무덤 아니라 어디라도 여자라면
- 그 여자가 그사람의 연인이라면 더 깊은 곳에 얼굴을 파묻고 하루를 나고 싶지 않을까요.
당신은 전설속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여걸 유디트 손에 죽은 홀로페르네스처럼 나에게
성적으로 유혹당해 죽음에 가까운 정사를 한번 했으면 하셨지만 저는 빈 시내 남쪽에
있는 바로크 궁전 벨베데레에 소장된 클림트 그림, 키스처럼 두 남녀가 꼭 껴안고
성적 교감의 여명을 틀며 시작하는 정사를 당신과 꿈꾸고 있어요 .
에로티시즘이 순간적인 육체의 환락이 아니라 영원으로 진입하는 일종의 관문처럼 순간적인
정사의 덧없음을 초월해 욕망의 숭고한 충족에 이르도록 노력한 크림트처럼 숭고한
에로티시즘의 미학을 당신과 나누고 싶어요.
곱슬머리의 남자가 꼭 껴안은 여자의 더 없이 행복한 표정, 오르가즘 직전의 환희가
표현된 얼굴의 그 그림을 보면 저도 언젠가 그런 정사를 하리라 했죠. 그 남자가 내게
당신으로 다가왔다는걸 저는 본능적으로 느낄수 있었죠. 지난 가을 저의 미술관에 들렀던
당신을 본 순간 저는 부끄럽지만 크림트의 그림을 떠올렸죠.
그림속의 곱슬머리는 부드럽게 컬이 져서 넘어간 당신의 희끗한 머리로 대체되었고
나는 속옷을 입지 않고 화려한 노란 무늬의 긴 원피스만 겉옷으로 걸치고 있었죠.
당신은 당시 중국현대작가 초대전을 관심있게 둘러 보셨죠. 내게 다가와 왕청의 작품에
대해 물어 왔을때 저는 알몸을 내 보인듯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어요. 이런 상상이
아니더라도 당신은 충분한 성적매력을 지닌 남성이였죠.
두 번째 만남에서 당신이 남한강을 따라 드라이브만 하고 저를 저의 집앞에 내려 주셨을때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르셨을거예요. 키스라도 없었더라면 저는 체면이고 뭐고 가리지 않고
당신을 나의 아파트로 유인하여 죽음에 가까운 정사를 펼쳤을지도 몰라요. 저는 너무
뜨거워져 있었거든요.
키스?
뭐랄까 당신의 키스에서 저는 오월에 청보리가 익어가는 맛을 느꼈어요. 청보리 말이죠.
풋풋한 풀내음과 알곡이 영글때 풋알들이 껍질에 밀착되어 밀도가 촘촘해 지는 질감
그 모든 것이 당신의 키스속에 있었죠. 고백하지만 제가 예일에 다닐때 조금 사귀었던
의대생인 스티븐과도 나누지 못한 영적인 키스였어요.
당신도 그러셨잖아요. 정아는 자그마한 체구로 그곳 친구들에게 인기가 짱이였을거라구요.
스티븐은 아버지가 상원이였는데 저를 무척 좋아 했죠. 결혼도 생각했었지만 후후.
그랬더라면 당신과 나누고 싶은 숭고한 에로티시즘의 미학을 이룰수 없겠죠.
당신과 나는 앞으로 긴 길을 걸어갈거예요.
당신이 그 옷을 입으려 하실지 모르지만 첫 정사를 저는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어요.
크림트에 나오는 남자가 입었던 황금색 가운 그리고 저는 비슷한 패턴의 쉬폰실크 원피스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 키스씬으로 시작해서 클림트의 유디트1 으로 끝나는 섹스말이죠.
have nice day
당신의 신다르크로부터.(저를 신데렐라라고 부르지 마세요 꼭요 ).
The Kiss
이 작품은 몽환적이고 에로틱한 그림으로 유명한 천재화가 클림트의 그림중에서도 독보적인 작품으로
유명한데 그 이유는 "키스"라는 독특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과, 눈부시게 반짝이는 금색의 화려함으로
사람들을 압도하고, 그 후 밀려오는 사랑의 허무함에 애태우게 되는 느낌이 들게하는 독특한 화면구도
때문이라고 한다. 언제나 센세이셔널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클림트의 작품 중에서는 드물게 발표와 동시에
오스트리아 정부에 매매되어 현재 오스트리아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1862-1918)
비엔나 분리파를 창시하여 종래의 미술 개념의 지평을 넓히는 진보적인 미술 운동을 지배했으며, 에곤 쉴레,
오스카 코코슈카의 선배이자 스승으로 그들과 더불어 오스트리아 현대 화단을 대표하는 가장 탁월하고 혁신적인
화가로 평가되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 ~ 1918).
.......
클림트 예술의 큰 특징은 세밀하고 아름다운 장식성과 여성의 이미지 표출이라 하겠다.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민감함은 여성의 초상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매력과 신비적인 특질을
강조하는 클림트의 독창성이 돋보인다.
그의 작품들은 '퇴폐적인 에로티시즘'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베토벤. 후리즈]에서 보여준것처럼 선의 리듬을
나타내는 솜씨와 멋진 장식적 표현은 [키스]처럼 놀라울 정도로 화려한 문양을 낳게 한 재능을 보였다.
클림트는 그가 처한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이기보다는 언제나 개인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항상 여유있고 풍성한 푸른 '수도사'스타일의 스모크를 입고 방랑하는 쪽이 성격에 맞을 정도로
보헤미안다운 기질을 갖고 있었다.
Judith 1
'잔인하고 야만적인 앗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는 이스라엘의 도시 베툴리아를 침략한다.
마을이 홀로페르네스 군대에게 철저히 유린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름다운 미망인 유디트는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이용하기로 한다. 요란하게 치장한
유디트의 미모와 달콤한 말에 속아 홀로페르네스는 그녀를 연회에 초대한다.
홀로페르네스에게 술을 먹여 유혹한 유디트는 그가 잠들자 칼을 꺼내 그의 목을 베어 버린다.
이스라엘은 그녀의 행동에 용기를 얻어 앗시리아 군대를 물리친다. 이것이 성서 속에 유디트 이야기다.
"그림의 주인공 유디트는 지금 몽롱한 눈동자로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유디트는 유명한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애국 여걸이다. 아시리아 군대가 쳐들어오자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 나선 유디트는 그 어떤 남자라도
호릴 만큼 매혹적으로 치장을 하고 적진에 위장 투항했다. 거기서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해
술 취한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런 애국 여걸을 클림트는 지금 몽롱한 한 사람의 요부로 그려놓았다.
클림트의 그림에서 유디트의 파멸적인 에로티시즘은 그 표정뿐 아니라 풀어헤친 젖가슴과 속이 비치는 옷,
그리고 죽은 적장의 머리를 애인 얼굴 쓰다듬듯 어루만지는 제스처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클림트는 유디트 이야기에서 유디트의 애국심보다는 남자를 유혹함으로써 파멸에 빠뜨릴 수 있는 여성의
성적 파워, 그 ‘위험한 마력’에 주목했다." ( 이주헌, 주간조선 2004,8 )
* Femme Fatale 팜므파탈
'치명적인 여자'라는 뜻의 불어로 흔히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기위해 남자를 유혹하고 이용한 뒤
그를 파멸시켜버리는 악녀를 지칭한다. 주로 영화나 소설 등의 여주인공을 가리킬 때 많이 사용한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서 젊은 군인 호세를 파멸시키는 여주인공'카르멘'이 대표적인 팜므파탈로
지칭되며, 실존인물 중에도 1차세계대전 당시의 유명한 스파이였던 '마타하리'가 팜므파탈의 전형으로
꼽힌다. 이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말타의 매' 등의 느와르 스타일 영화가 전성기였을 당시
육감적이고 선정적인 몸매와 뇌쇄적인 눈빛을 가진 여배우들이 대거 등장한 이후부터 였다.
팜므파탈이라는 단어가 가끔 이야기된다.
그런데, 신정아는 과연 팜므파탈인가?
이런 제목의 글이 10월8일자 매경에 실렸다.
[포커스]
신정아는 과연 팜므파탈인가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신정아 씨를 몇몇 사람들이 `한국의 팜므파탈`이라고
표현하는 걸 봤다. 사건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왠지 격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팜므파탈(femme fatale)`이라는 프랑스어는 `치명적 여인`이나
`운명적 여인`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보통 팜므파탈을 `악녀(惡女)`
정도 뜻으로 이해하는데 팜므파탈과 악녀는 결코 같은 뜻이 아니다.
팜므파탈이라는 말 속에는 많은 은유가 숨겨져 있다. 어쩔 수 없는 운명 때문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자기 삶을 비극적으로 끝낸 여인이 팜므파탈이다.
그래서 팜므파탈의 삶은 소설이나 영화의 좋은 소재로 활용되거나 하나의 전설로 남는다.
동양 여인으로 팜므파탈이라는 낙점을 받은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전설적인 적군파 간부 시게노부 후시코다.
벤구리온공항 테러사건, 일본항공 납치사건, 쿠알라룸푸르 미국 영사관 점거사건 등
굵직한 테러사건 때마다 검은 긴머리를 휘날리며 외신에 등장했던 그녀는
70년대를 상징하는 팜므파탈이었다.
이 이야기를 꺼낸 건 그녀를 미화하자는 게 아니라 그녀의 악행 이면에는
나름대로 치명적인 운명이 감추어져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전후 도쿄 달동네에서 태어난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간장공장에서
여사원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나 첫 직장이 그녀에게 안겨 준 건
고졸 여사원에 대한 뿌리깊은 차별뿐이었다. 그녀는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메이지대학 야간부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세상에 저항하는 투사가 된다.
일본 학생운동이 실패하자 그녀는 팔레스타인해방운동에 참가하게 되고
기관총과 폭탄만이 세상의 차별을 없앨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이렇게 그녀는 세계적인 테러리스트 반열에 올랐다.
시게노부는 결국 2000년 11월 일본에 잠입하다 체포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다른 팜므파탈들도 모두 치명적인 운명에 내몰린 여인들이다.
마릴린 먼로도 팜므파탈 칭호를 받은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머리가 텅 빈 섹스 머신` 정도로 치부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그녀는 "할리우드는 키스 한 번에 1000달러를 지불하지만, 영혼은 50센트인 곳"이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의식 있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전 미국을 휩쓸 때 당당히 매카시즘에 저항한 배우였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급진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를 지지했으며,
가부장적인 할리우드 시스템을 비판한 의식 있는 여배우였다.
하지만 남자들은 오로지 그녀의 몸에만 광분했고 결국 수많은 의혹을 남긴 채
짧은 인생을 마감한다. 그녀가 만약 예쁘지 않았다면,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그녀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Don`t cry for me Argentina)` 주인공 에바 페론도
팜므파탈로 불린다. 보수주의자들이 악마라고 폄하한 그녀는 세상과 싸운 여인이었다.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난 타고난 미모를 지닌 그녀는 농장주 자식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한 후
고향을 떠나 나이트클럽 댄서, 싸구려 코미디 배우 등을 전전하다 쿠데타 주역이었던
후안 페론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후안 페론이 집권하면서 영부인이 된다.
영부인이었던 시절 내내 반대파들에게 창녀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지만
그녀는 빈민구호에 앞장섰고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준 진보적 정치가였다.
적어도 이쯤 되는 여인들에게 호사가들은 팜므파탈이라는 호칭을 붙여준다.
다시 신정아 씨 이야기로 돌아가자. 몇몇 사람들이 그녀를 남성 중심의 학력사회에
도전한 팜므파탈로 묘사하는 건 옳지 않다.
아직 더 많은 조사가 이루어져야겠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 유명대학 졸업증명서나
위조한 여인을 팜므파탈로 부른다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적어도 위에서 거론한 여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삶에 대해 정직했고,
결과가 옳았든 옳지 않았든 세상에 맞서 정면으로 승부를 했다.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고 해서, 미모를 지녔다고 해서 팜므파탈이라는 용어를 남발하는 건
아무래도 지나치다.
[문화부 = 허연 차장 praha@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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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7 18:48:44 입력
*조블 2007/10/11 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