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말이란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인데,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말에도 맛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대화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도 있지만, 실수와 유우머를 즐기며 터뜨리는 웃음,
치열한 논리의 전개, 감성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즐거움도 있다.
실수는 실수일뿐, 고의가 아니므로 어느 정도까지 애교로 봐줄만하다.
문제는 악의가 담기거나 의도가 담겨있어 사람을 괴롬히는 경우인데,
특히 최근 도처에 이런 모습이 보이고있는 게 오늘의 모습이다.
말이 실수인지. 유우머인지, 고의와 악의인지, 혹은 책임회피의 비겁함인지는
누구나 알수 있는데, 다만 악의와 비겁함만은 정작 자신만이 모르고 있으니 우스운 일이다.
부시 미 대통령이 7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말실수’를
또 저질렀다. TV에 그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부시 특유의 그 표정이다.
실수가 일상화되니 큰 뉴스도 아니다. 그냥 재미로 즐기면된다.
부시는 세계 각국의 경제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하면서 자신을 소개한
존 하워드 호주 총리에게 답례를 하며
"이처럼 훌륭한 OPEC(석유수출국기구) 정상회담 자리를 마련해준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다"
고 말했다.
수백명의 청중들이 폭소를 터뜨리자 부시는 황급히 자신의 실수를 정정하면서
"하워드 총리가 내년 OPEC 정상회담에 나를 초청했다" 며 농담으로 이를 만회했다.
하지만 호주는 OPEC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이 같은 농담 역시 실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유명한 말 실수는 계속 이어진다.
그의 말실수는 한번 했다하면 거의 메들리 수준이다.
그는 연설 말미 하워드 호주 총리의 지난해 이라크 주둔 오스트리아군 방문을 언급, 다시 한번
청중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오스트리아는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하지 않았으며
호주(오스트레일리아)가 1500명의 병력을 파견해 놓고 있다.
그런데 부시가 말실수만 한것은 아니다.
말실수를 위트로 연결한 일례도 있다.
얼마 전 프랑스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기자들이 물었다.
- 불어를 할줄 아시는지...
대답이,
- 불어를 어찌 할 줄 알겠어요, 영어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데.....
그때 부시의 표정이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나는 박장대소하였다.
실수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고약한 말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데 더 고약한 것은,
제 입으로도 하지않고 남의 입을 빌어 구차스럽게 해석과 의미를 부연한다.
왜 유우머를 하지 못하는 것일까.
링컨의 유모어는 유명하다.
그의 정적이 링컨의 이중성을 표현하려,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하자,
링컨이 " 두 얼굴을 가지고있다면 지금 이 얼굴(못생기기로 유명한 그 얼굴 )을
가지고 나왔겠냐" 고 조크를 한다.
이태리 축구선수 토티의 유머집도 유명하다.
그는 자신이 쓴 책이 몇십만권 팔렸다는 이야기에, 갸우뚱하며 말하기를,
....책을 한권 밖에 안썼는데,...(어떻게 수십만권이 팔렸다는거지???)
캄보디아 애기를 입양한 토티가 어느 날 캄보디아 말을 배우려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애기가 이제 말을 시작하려고 해서, 앞으로 이야기라도 하려면 미리 말을 배워둬야할 것 같아서....
말이 가져오는 감성의 아름다운 표현과 미소, 웃음...
그런 멋을 가지면 참으로 좋으련만....
치열한 말의 전쟁이 가지고있는 논리와 감성의 대결은 긴장과 집중을 가져온다.
그런데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으며, 내심 실망이 크다.
남한산성에 갇힌 그 한 겨울의 슬픔은, 누구도 잊을 수 없는 우리 슬픈 역사의 한 장면이다.
최명길이 쓴 항복문서를 김상헌이 눈물을 쏟아내며 찢는다
그 찢어진 항목문서를 최명길이 다시 피눈물을 흘리며 주워들고 붙인다.
그 슬픔의 무대가 남한산성이다.
그런데, <남한산성>에는 그런 치열한 논리의 전개가 너무 약하다.
책을 광고하는 글에서는 그에 대한 기대치를 얼마나 높여놨는가.
적어도 김훈이라면 그렇게 넘어가서는 안되는 것이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화장>, 그리고 <풍경과 상처>, <자전거여행>을 읽으며
김훈을 흠모하던 나에게는 남한산성의 그 한 계절, 치열함의 순간이 그리 지나가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김훈에 대한 높은 기대가 나를 아쉽게 한 것이지, 그에 대한 평가를 낮추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던 당시,
지식인의 비겁함을 드러내는 이야기 하나.
이름이 누구던가, 기억이 흐릿하지만
굳이 그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이제 의미없는 일일 것이다.
그는 이렇게 쓰고, 그리고는 입을 꾸 - 욱 다문다.
不可不可
도대체 무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주장하고자 함인가.
불가(不可)하오 불가(不可)하오, 하며 통렬하게 부당함을 외친 것인가?
불가불(不可不) 가(可) 하다고, 불가피하게 어쩔 수 없음을 이야기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불가(不可)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不可) 하니, 지금의 현실에서 내 할 말은 이 것뿐이라는 것인지...
뜻이 있으면 이를 밝히는 것이 지식인의 도리이지 않겠는가.
남한산성에 갖혀지내던 당시의 우리 선조분들은 참으로 위대한 분들이셨다.
삶을 구하여 삶을 유지하려 하셨던 분이나, 삶을 버림으로써 삶을 다시 찾으려 하셨던 분이나....
부시의 말실수를 보며 잠시 떠오른 생각들이다.
*조블 2007/09/1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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