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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일기(1)/동창회와 선생님

일상

by 아이현 2015. 12. 30.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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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일기(1)/동창회와 선생님


12월 9일(금)


저녁 7시, 두 군데 모임이 있다.

인천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고등학교 동창회.  그리고 종합상사 시절

중공업 부문 수출을 하던 부서 사람들의 모임인 “중우회”모임이 삼성역 부근 '남산' 에서 있다.  

둘 모두 빠지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하나는 포기해야한다.  


30분 정도 늦게 동창회 모임 장소에 도착하니 벌써 많이 모여있었고

고교 때 선생님 여섯 분이 참석하여주셨다.  선생님들께서는 앞 헤드테이블에 계신다. 

우선 선생님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니, 아 우리 반 반장 왔구나, 하며

두 분이 동시에 말씀하신다. 

한분은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장 재호 선생님,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심 재갑 선생님. 

그리고 곽 순명 선생님, 강 양희 선생님, 유 기화 선생님, 조 동현 선생님이 참석하셨다.


곽 순명 선생님은 수학을 가르치셨는데, 고등학교 때 학생회 주도로

우리가 뭔가 사보타지를 음모하고 있을 때 사전에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봉쇄하려

우리 집에까지 찾아오셨던 적이 있었고, 정이 많으신 분이다. 


조 동현 선생님은 우리가 중학교때 국어를 가르치셨는데,

평소처럼 모임에서도 얌전하셨고 말씀이 별로 없으셨다. 

그리고 유 기화 선생님은 역사를 가르치시다 영어도 가르치셨는데, 항상 유쾌하신 분이다. 

모임에서도, 우리는 가르치기만하지 실제는 잘 몰라, 돈 버는 방법도 가르치는 것만 알지

실제는 남들이 더 잘하지, 그리고 말이야 내가 영어도 가르쳤단 말씀이야,

DO는 타동산데 타동사는 목적격을 가져.... 이렇게 말씀을 이어가시면서 농담도 하셨다. 

아니, 타동사 목적격은 어느 시절이야기야, 하면서도 우리 모두는

쿡쿡거리고 웃으며 그 시절 생각을 하며 잠시 행복해졌다.


강 양희 선생님은 역사를 가르치셨는데, 우리가 중학교 2학년 때 부임하셨다. 

한창 젊으셔서 그야말로 팔팔(죄송!!)하셨는데, 수업시간에 중국의 4대 기서를

이야기하다가 책을 하나하나 언급하시면서 읽은 사람 손들어봐, 하셨는데,

<금병매>에 가서는 아무도 없고 나 혼자 손을 들었다. 

운우지정을 나누는 이야기가 조금 멋쩍기는 하였지만, 읽었기에 읽었다고 손을 들었는데,

선생님께서, 하, 요놈 아주 응큼한 놈이네, 하셨던 기억이 난다. 


훗날 내가 비스마르크에 관하여 쓴 글을 보시고 칭찬해 주셨다. 

제일 젊으셨던 분이라서 그런지 이제와 뵈니 제일 많이 늙어 보이셨고

젊었던 날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말씀하시는 기본은 젊었던 시절 그대로의

패기를 보여주셨다. 


장 재호 선생님은 수학을 가르치셨는데,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이셨다. 

중학교에 입학하니 우선 과목마다 선생님이 다르다는 것이 엄청난 변화였다. 

지금은 배우는 수준이 많이 높아져있을 것이라 짐작하지만, 첫 수업 시간에

두 개의 선을 대각선으로 긋고 서로 마주보는 각이 같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문제를

제시하셨는데, 명쾌하게 입증하는 논리구조가 당시 내게는 그야말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어느 날, 점심시간 후 나른한 오후 첫째 수업시간,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더니,

오늘은 참 기쁜 날입니다, 내 아주 오래된 친구가 찾아왔어요, 점심을 하면서 한 잔 했어요,

그러고는 앞 의자에 앉으시더니 그냥 주무시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냥 신이 나서 한 시간 잘 땡땡이 쳤지만.....  

그때 선생님으로 하여금 술을 드시게 했던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심 재갑 선생님은 모교의 선배이자 서울법대를 나오셨는데,

대학시절 학생회장을 하셨고, 졸업 후에는 모교에 교사로 부임하여 후배들을 가르치셨다. 

선생님께서는 가르치시던 사회 수업보다도 우리의 인성교육과 서클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들에게도 이런 것들을 많이 가르치셨는데, 우리 때에는

이렇게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교육계에 투신하신 분들이 여러분 계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하고는 오랫동안 연락을 하며 지내셨는데, 대학시절 학교가 데모로 문을 닫았을 때

나는 선생님께서 따로 하시던 테니스코트에 매일 출근하여 일도 거들고

테니스를 가르치던 여자코치와 몇 달을 같이 재미있게 지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상사 주재원으로 방콕에 나가있을 때도 편지를 보내주시면서 격려해주셨는데,

최근에 오랫동안 연락을 드리지 못하고 지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월요일(12/19) 심 재갑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두툼한 우편물을 받았다. 

놀라움과 반가운 마음에 열어보니, 고등학교 1학년 3반 시절,

우리가 펴낸 학급지 <賢友>를 한 부 보내주셨고, 편지에 자상하게 안부를 물으셨다. 

우리가 만든 책자를 이제 우리는 모두 잊어버리고 간직하고 있지도 않건만,

선생님께서는 그 오래된 책자를 지금까지 간직하시다가 나에게 보내주셨다. 

감격과 함께, 이 무슨 내 꼴이 이리도 파렴치한가, 하는 아픔과

송구스러움에 오랫동안 마음이 아려왔다.    급지와 편지는 따로 이야기해야겠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창들이 여러 테이블에 흩어져있기 때문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안부를 물으며 궁금하던 소식들을 듣는다. 

친구가 나와서 단소를 불고 또 그의 후배들이 나와 국악을 연주한다. 

<소년>을 만나, 멜 보냈는데 연락이 없다고 첸나이에서 성님이 울고 있구만, 답장좀 보내슈... 

그는 항상 하듯이 풋풋하는 미소만 날린다.  

내년에는 지자체장 선거가 있으니 누군가는 이 일에 관여가 되어있고,

내년 시장선거 이야기도 잠깐 나눈다.


이제는 졸업하고 오랜 세월이 흘러 우여곡절 많은 삶에 부침도 많다. 

우리 동창들도 이제 제법 늙기도 하였으니, 선생님과 나란히 서서 말씀을

나누다 보면 이제는 누가 선생님이고 누가 제자였는지 모를 친구들도 있다.  

자주 만나는 친구들도 있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도 있다.  

모두가 만나면 반갑다.  자주는 못 만나도 또 내년에는 다시 볼 수 있겠지.


그런데 그 옛날 올림포스호텔이 이제는 왜 이리 작아 보이는 것인지..... 

마치 그 넓던 동네 골목길 놀이터를 오랜 세월 후 다시 찾아갔을 때,

이 작은 골목이 우리가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장처럼 놀던 그 놀이터가 맞는 거야?

하는 그런 심정이었다.


항상 추억은 마음속에 있으리.

세월은 우리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남겨놓은 채, 어느 틈엔가 저 멀리 가버렸다

 


 

 *조블 2005/12/2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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